다문화교육 생활체험수기 대상 받은 이은경 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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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방송에서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다. 다문화는 이제 공익광고는 물론 각종 프로그램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가 됐다.

 각종 통계를 보더라도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다. 휴일 거리에서 외국인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만큼 다문화를 인정하고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

천안 백석초등학교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이은경(사진·40) 강사가 얼마 전 ‘충남교육청 다문화교육 생활체험 수기 대상’을 받았다.

다문화가정을 다니며 체험한 일들을 ‘같이 쓰는 마주 이야기’란 제목의 글로 담았다. 한국사람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다문화가정이 갖는 ‘다문화’란 단어에 대한 거부감, 피부색이 다른 다문화가정의 한국생활, 아이들이 겪어야 할 주변의 시선, 다문화에 대한 여러 오해와 부정적인 이미지 등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 그리고 작은 희망을 담았다. 이은경 강사에게 다문화가정의 현실과 그들과의 만남에서 느낀 생각을 들어봤다.

-어떻게 강사로 일하게 됐나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2000년까지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적이 있어 이번 강사 모집에 응모했습니다. 백석초 학부모이면서 다문화가정을 다니며 한글을 가르치고 학교 수업에 뒤쳐지지 않도록 부진한 과목 위주로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수업을 하면 다문화가정이 고마워 하던가요.

 “부모들이 한글 수업이라고 알지 다문화 수업이라고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 조차 ‘다문화’라는 용어를 잘 모르고 그 단어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느 가정은 ‘다문화’라는 말 좀 안 하면 안되겠냐고 하시기도 합니다. 그 가정은 며느리와 사위가 외국인이다 보니 그런 말 쓰는 게 부담이 되시나 봐요. 어떤 집은 주변 아이들이 흉 본다고 집으로 와 수업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마움을 가지시는 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반갑게 맞아 주시지는 않는 편입니다.”

-다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뀐 건 사실이에요. 예전의 경우 중국에서 온 엄마라고 하면 좀 꺼려했지만 요즘은 안 그래요. 조선족 분이면 중국어를 잘하겠구나 생각해 자기 아이들을 그 집으로 놀러 보내 중국어를 배우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처럼 못 가게 말리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이 여러 문화를 경험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동남아 출신에 대해서는 좀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 일본이나 미국 가정은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보람을 느꼈거나 안타까웠던 일이 있나요.

 “한국에 온 지 2년 정도 된 외국인 아이(아버지가 러시아분)가 있어요. 학교에서 방과 후에 부진과목수업을 받고 있었어요. 또래에 비해 성숙한 구석이 있고 자존심도 센 아이인데요, 같이 하는 공부에 열심이더니 2학기 기말고사에서는 두 과목이나 100점을 받았다고 좋아했어요. 다른 아이가 읽다가 분리수거용에 내다 놓은 책들도 가져와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데 가끔 나온 지 오래돼 맞춤법이 틀린 책을 읽고 있으면 대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요.”

-현장에서 일하면서 개선 돼야 할 점이 있나요.

 “제가 맡고 있는 아이 중에 부모님이 모두 미국분인 가정이 있어요. 한국말이 많이 서투르세요. 학교에서 가져오는 알림장을 읽으실 수는 있어도 뜻을 다 알지 못할 때가 많으시죠. 그래서 매번 갈 때마다 아이 과제부터 우선 챙겨주고 있지만 ‘아이가 교과서를 또 빼먹었어요. 이번에는 8절지를..’하는 담임선생님의 빨간색 글씨를 보게 되면 제 아이 준비물 못 챙긴 것처럼 생각이 돼요. 이런 부모님을 가까이서 도와드릴 도우미 학부모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글능력이 떨어져 수업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재가 많지 않아요. 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아정체성으로 힘들어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개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멘토지원도 필요해 보입니다. 아울러 다문화가정일수록 아버지의 자리가 커야 할 것 같은데 아버지들도 같이 교육을 받으면 더 좋은 가정을 이루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이들을 위한 일이 될 테니까요.”

글·사진=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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