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야’ 다시 꺼낸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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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12년 재선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사진) 미국 대통령이 1992년을 ‘리메이크’ 하고 있다. 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당시 현직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에 맞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란 슬로건을 앞세워 승리를 거뒀다.

 오바마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있을 신년 연설의 화두를 ‘경제’로 정했다. 올 들어 윌리엄 데일리 JP모건체이스 중서부 지역 담당 회장을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제프리 이멀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겸 최고경영자를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각각 기용한 데 이은 조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라이벌들이 공격 목표로 삼는 경제 분야에 남은 임기 동안 매진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자리와 국가경쟁력’.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지지자들에게 보낸 동영상에서 올해 신년 연설의 화두를 이같이 공개했다. 미국 대통령이 신년 연설을 앞두고 화두를 미리 제시하는 건 이례적이라고 AP통신·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미국 언론이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5일 상·하 양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신년 연설을 할 예정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동영상을 통해 국가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당장은 일자리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미국이 세계 1위 경제대국 지위를 지키자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 첨단기술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고속도로·공항에서부터 초고속 인터넷까지 교통·통신 시스템 업그레이드도 촉구했다.

 일자리와 국가경쟁력 강화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으로 오바마는 자유무역을 강조했다. 22일 함께 발표한 인터넷·라디오 주례연설에서 그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경기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제품을 판매할 해외시장 개척”이라며 한국과 타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예로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자리와 함께 국가경쟁력을 화두로 꺼낸 건 두 가지 포석이다. 우선 경제 살리기 드라이브를 위해서다. 내년 재선을 위해선 두 자릿수에 가까운 실업률을 끌어내리는 게 급선무다. 그가 경제라는 중도적 어젠다를 국정연설의 화두로 삼은 건 공화당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제스처이기도 하다고 NYT는 분석했다.

일자리나 국가경쟁력은 공화당도 받아들일 수 있는 어젠다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오바마의 신년 연설 때는 여야 의원이 따로 앉던 관행을 깨고 섞어 앉기로 해 ‘화해 분위기’도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재정적자 감축 의지도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R&D·통신 등에 대한 투자만 강조하고 재정적자 감축 얘기는 뺀다면 자칫 정부 씀씀이를 더 늘리려는 게 아니냐는 공화당의 의구심과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공화당은 국가부채 한도를 증액해 달라는 백악관의 요구에 “재정적자부터 줄이라”며 정부지출 삭감을 벼르고 있다.

◆파월의 충고=이런 분위기 속에 콜린 파월(Colin Powell) 전 국무장관이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정부에서 흑인 최초로 국무장관을 지낸 그는 2008년 대선 당시 민주당 오바마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 투표에 영향을 미쳐 오바마 당선에 기여했다.

 그랬던 파월 전 국무장관은 23일 CNN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2012년 대선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나는 특정한 정당의 라인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며 “(지금)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으며,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 때 모든 후보를 관찰해보고 최후의 두(민주-공화) 후보가 남을 때까지 아무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8년에 보여준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대통령 오바마의 리더십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파월 전 장관은 그 이유도 스스로 밝혔다. 문제는 경제였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문제 해결에 충분히 집중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인들은 25일 오바마의 올해 국정연설에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며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실업률도 낮출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는 수퍼맨을 대통령으로 뽑은 게 아니며, 아직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 잠재력이 있다”고 여운을 뒀다.

 그러나 지지에서 관망으로 돌아선 파월 전 장관의 모습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현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재선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워싱턴=정경민·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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