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가요와 군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대중가요는 한 시대를 그려낸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가요 가사만큼 가슴을 때리는 표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가요엔 그런 대중적 호소력이 숨어 있다. 군인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다. 1950년대 6·25전쟁을 다룬 노래가 특히 그랬다. 가수 현인은 ‘전우야 잘 자라’에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며 생사(生死)를 함께하는 전우애와 전쟁의 비정함을 표현했다. ‘전선야곡’은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장부의 꿈 일러 주신 어머님의 목소리’로 군인정신을 장부(丈夫)의 꿈에 빗댔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는 베트남전을 경험한 군인이 부상했다. ‘디바’ 김추자는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님은 먼 곳에’ 갔지만 ‘의젓하게 훈장 달고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를 열창했다.

 이후 우리 가요에서 군인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젊음을 잠시 접어둬야 하는 아쉬움으로서의 입영(入營)이 그 공백을 메워갔다. 최백호는 ‘내 나라 위해 떠나는 몸…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며 ‘입영 전야’를 노래했다. 80년대 김광석은 ‘이등병의 편지’에서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다오/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라며 안타까워했다. 90년대 김민우의 ‘입영 열차 안에서’는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삼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라며 이별의 정을 담아냈다.

 요즘 가요에서 군대나 군인 얘기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생니를 뽑고, 어깨탈골 수술을 받아 군대를 기피하려는 풍조가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군인을 노래 가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엔 신비적 요소가 부족한 탓이다. 유명 연예인이 군대에 가는 당연한 병역의 의무를 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라며 호들갑을 떠는 사회에서 군인은 주연(主演)이 될 수 없다. 힘도 ‘빽’도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군대라면 신세타령의 푸념조 노래밖에 더 나오겠나. 강요된 자부심을 요구하는 군가(軍歌)를 빼면 말이다.

 ‘아덴만 여명(黎明)’ 작전에서 해적을 소탕한 해군 특수전(UDT/SEAL) 요원들은 기억 속에 지워져 있던 참군인을 되살려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용맹한 군인의 모습은 상쾌했다. 군인이 가요 속에서 등장하며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고대훈 논설위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