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장비에 ‘위험 안고 달리는 1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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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2일 고가 사다리차의 승강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 소방관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사진은 이번에 사고가 난 고가 사다리차. [광주 광산소방서 제공]

“앞으로 고가 사다리차를 어떻게 타야 할지 불안해 하는 동료들이 많아요.”

 광주광역시에서 15년 넘게 구조·구급 현장을 누벼 온 한 소방관의 말이다. 22일 고층 아파트 외벽에 달린 고드름을 제거하다 30m 아래로 추락한 고가 사다리차 승강기 사고와 관련해 소방관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업무 자체가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이므로 항상 불안감이 존재한다”며 “장비와 동료들을 믿고 일은 하겠으나, 인명 사고가 난 데 따른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주지역엔 5층 이상에 사용하는 고가 사다리차가 모두 5대 있다. 5개 소방서 별로 1대씩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광산소방서의 것은 1992년 11월 등록된 차로 내용연수(15년)를 넘긴 지 4년째다. 내용연수는 해당 연수가 지나면 교체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이를 경과했다고 모두 교체하는 건 아니라는 게 소방서 측의 설명이다. 내용연수는 당초 12년이었으나 지난해 관련 법을 개정했다. 서부소방서와 북부소방서에 있는 고가 사다리차는 각각 1993년과 96년 등록됐다. 남부소방서·동부소방서 것의 등록 시기는 2003, 2005년이다.

 문제는 장비가 노후화해도 쉽게 교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구급 차량을 구입할 경우 국고에서 50%만 지원될 뿐, 고가 사다리차나 소방차 등은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만 구입하도록 돼 있다. 사양에 따라 다르지만, 고가 사다리차의 가격은 7억∼8억원이다. 재정 형편이 좋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에선 교체가 쉽지 않다.

 이번에 사고가 난 사다리차는 지난해 11월 중순 실시한 안전검사에선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이번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노후화된 장비 탓에 사고가 났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승강기를 지탱하는 쇠줄이 끊어진 데다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장치마저 작동하지 않았다. 이 사다리차는 지난해 11월 광산구 모텔 화재 때도 사다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초기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광산경찰서 강성복 강력팀장은 “안전검사가 제대로 됐는지, 승강기의 브레이크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 등이 조사 대상이다”며 “정밀조사를 위해 관련 자료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넘겼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5시15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한 아파트 12층에서 고가 사다리차 승강기를 타고 고드름을 제거하던 광산소방서 이석훈(36) 소방교 와 노은호(28) 소방사가 승강기와 함께 30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이 소방교가 숨지고, 노 소방사는 중상을 입었다.

 광주시는 이 소방교에 대해 정부가 1계급 승진시키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으며, 순직 처리키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장례식은 25일 오전 9시 광산소방서에서 열린다.

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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