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모자라는데 투기까지 … “유가 100달러 갈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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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연말·연초 국제유가가 강세다. 며칠 전 2008년 10월 이후 2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올해 국제유가가 단기적으로 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강세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유가를 초래하는 3대 요소로 꼽히는 ▶수급 불안 ▶약(弱)달러 ▶투기가 요즘 시장에 고루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수급 상황이 좋지 않다. 올해 원유 생산량은 하루 8727만 배럴로 지난해보다 95만 배럴 증가할 전망이지만 여전히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중국 등 신흥국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올해 원유 수요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가 올라도 중국 등 신흥 개도국 수요는 많이 줄지 않는다. 보조금이나 세금 인하 등의 유가안정책을 써서 유가 상승분을 시장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하루 50만 배럴의 공급 부족이 생겨 원유 재고도 감소세로 바뀐다고 봤다.

 금융시장 등 경제여건도 고유가 쪽이다. 주요국의 저금리 정책으로 요즘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하다. 돈 찍어 채권을 매입하는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이 대표적이다. 넘쳐나는 돈이 원유 등 상품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즈는 지난해 원자재시장으로 유입된 금융자금이 60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2009년 760억 달러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이다.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장기적으로 약달러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유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2007년 이후 고유가와 약달러는 동의어처럼 함께 움직였다. 투기세력이 있다는 신호도 감지된다. 지난해 서부텍사스유(WTI)는 3~4개월 간격으로 크게 등락했다.

 부진을 면치 못했던 미국 경제가 회복하고 있다는 점도 유가 상승을 부추긴다. 미국이 감세 조치를 연장한 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3% 이상으로 올려 잡는 기관이 늘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이 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졌다. 이에 따라 인플레 헤지를 위해 원유 등 상품에 투자하려는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실물자산에 투자하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가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주요 투자은행들은 올해 평균 유가수준은 배럴당 85~90달러로 지난해(1~11월 78달러)보다 다소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다시 등장했다. 도이치뱅크·뱅크오브아메리카·JP모건은 양적 완화 정책 등으로 달러 약세가 이어지면서 배럴당 유가(WTI 기준)가 1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하락 요인도 있다. 유로존 재정 위기가 여전하고, 중국 등 신흥국이 금리 인상 등 긴축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국제유가가 큰 폭의 등락을 반복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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