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중 동주’ 시대 개막 …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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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긴장상태를 유지했던 한반도 정세가 일단 대화 국면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이 어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인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은 공동성명을 통해 “최근 사건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진 데 우려를 표시했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중요하며,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하루도 안 넘겨 북한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명의로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통지문을 보내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의했고 남측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북측은 의제로 ‘천안함 사건·연평도 포격전에 대한 견해 발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는 문제’를 제시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책임을 둘러싸고 핑퐁상태를 면치 못하던 남북관계에서 군사 대화가 이뤄지는 상황에까지 온 것은 미국이 중국을 동등한 파트너로 공인한 것이 가장 큰 배경이라고 본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중국에 공식적으로 G2의 지위를 부여한 대관식(戴冠式)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최고의 예우를 갖춰 깍듯이 환대했다. 핑퐁외교로 대미(對美)관계의 물꼬를 튼 지 40년, 공식수교 32년 만에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大國)으로 굴기(<5D1B>起)했다.

 양국 정상이 채택한 41개 항의 공동성명은 한 배를 타고,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을 이끌어 갈 두 선장이 작성한 해도(海圖)와 다름없다. 많은 부분에서 의기투합했지만 이견도 있었다. 상호존중과 호혜의 정신에 입각한 ‘미·중 동주(美中同舟)’ 시대의 순항(順航)을 기대한다.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강력하고 번영하며 성공적인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국가로서 평화와 안정, 지역 번영에 기여하고 있음을 환영했다. 중국의 거친 부상과 미국의 노골적 견제로 최근 불거진 대립과 갈등의 제로섬 게임을 지양하고, 상호협력에 기초한 상생과 공존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높이 올라 멀리 보는 등고망원(登高望遠)의 자세로 G2의 위상에 걸맞은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인권이나 환율처럼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시각차를 드러냈다.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인권 증진과 민주주의가 외교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 반면 중국은 “내정간섭은 안 된다”고 맞섰다. 무역불균형과 관련한 위안화 환율 문제에 대해서도 양측의 견해가 팽팽히 맞서 공동성명에는 “위안화 환율 개혁과 신축성 제고를 위해 노력한다”는 선에서 봉합했다. 이견이 있는 부분은 그대로 두고,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에서 협력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이 발휘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최근 1~2년간 북한 일변도 지지 정책을 취해 왔다. 이는 미국과 각을 세워야 미국과 대등한 국제적 파워를 얻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이제 미국으로부터 명실상부하게 G2의 위상을 확보한 만큼 한반도 문제에서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에 대한 발언이 달라진 것이 한 예다. 북한이 UEP를 공개한 이후에도 입을 다물었던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UEP에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일단 긍정적으로 보이나 미·중은 G2로서 보다 책임감을 갖고 대처해 UEP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동북아는 중국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 문제는 국제 문제화됐지만, 이를 포함한 전반적인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다.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여는 것도 남북한이다. 따라서 이번에 남북 간에 군사 고위급 대화가 열리게 된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북한의 회담 제의는 수용했지만 연평도 도발 등을 분명하게 따질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중 정상회담 이전까지 북한의 명시적 사과가 없이는 북한과의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갑자기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국민에게 오락가락했다는 인상을 줬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번 회담이 열려도 북한이 연평도 도발 등에 대해 남측이 기대하는 만큼의 수준에서 사과를 표명할지는 불투명하다. 그럴수록 대화를 기피하지 말고 북한과 만나 그들의 책임을 추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어느 수준까지 남측의 요구를 수용하면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등의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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