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낮추던 재경부 ‘최틀러’ 오후 들어 목청 높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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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경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별명은 ‘최틀러(최중경+히틀러)’다. 한번 정책을 정하면 독일병정처럼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특히 환율에서 그랬다. 강소국이 되려면 ‘수출을 위해선 원화가치를 낮게 가져가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최틀러란 별명도 환율 시장에서 붙었다. 2003년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이었던 그는 환율 방어에 올인했다. 수십조원을 쏟아부어 10조원 가까운 손실을 보기도 했다. 의회가 추궁하고 장관이 말려도 듣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시장에선 달러당 1140원을 ‘최중경 라인’이라 불렀다. 특정 환율에 누군가의 이름이 붙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외환딜러 사이에선 “최중경과 맞서지 말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 바람에 시장을 무시하고 관치(官治)를 즐긴다는 부정적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18일 국회에서 진행된 청문회에선 그 ‘최틀러’의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다.

 - 장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무소속 최연희 의원)

 “가능성이 없다곤 생각 안 했지만 꿈까지 꾸진 않았습니다. 과장 하는 게 목표였습니다.”(최 후보자)

 - 재무부 출신들이 우월의식이 있어 비판받고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최 의원)

 “잘 새겨서 충분히 설명해 협조 구하고. 우선 겸손해야 한다고….”(최 후보자)

 분홍색 넥타이를 매고 나온 그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낮고 차분했다. “깊이” “크게” 등 부사를 써가며 반성도 여러 번 했다. 부인 명의인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 면적을 줄여 신고해 부가세 600여만원을 내지 않은 것에 대해서다.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 “도대체 최틀러는 어디 갔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얘기들이 전해져서였을까. 오전 내내 굽실하던 그의 허리는 점심 시간 후 뚜렷이 펴졌다. 야당 의원들이 “몰랐다는 전제로 투기를 인정하라”고 요구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소신 발언도 이어졌다. 최 후보자는 “재정 사정이 어려워도 기름값이 서민생활에 피해를 주는 정도가 심해지면 유류세를 감면하도록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10시 민주당 김재균 의원의 추가 질의 때에는 “답변할 시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김영환 지식경제위원장은 청문회를 마치면서 “제가 15년 정도 정치를 하면서 이런 고압적 자세를 가진 장관 후보자를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 후보자는 마무리 발언에서 “제가 목소리 톤을 높인 것은 (남들이)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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