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놀라게 한 이 남자 … 한대근 실리콘웍스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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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에서 ‘ 한국호’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금융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삼성전자·현대 차 등 대기업들이 새로운 세계 리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달라진 건 대기업만이 아니다. 소재·부품 분야에서 대기업을 지원 사격하거나, 독자 브랜드로 틈새시장을 공략해 세계 일류로 도약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딜로이트와 중앙일보가 이런 중소기업을 찾았다. ‘이노패스트 2011’ 10개 기업이 그 주인공들이다.

특별취재팀=김준현최현철·하현옥·한애란·권호·김경진·권희진 기자

 태블릿PC ‘아이패드’와 초슬림형 노트북 ‘신형 맥북에어’. 애플의 최신 히트작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제품이 있다. 실리콘웍스의 액정화면(LCD)용 반도체다. 실리콘웍스의 매출은 지난해 3분기까지 1926억원. 국내 반도체 설계 업체 중 1위다. 이 회사 한대근(51) 사장은 LG반도체 수석연구원 출신이다. 1999년 이른바 ‘빅딜(Big Deal·사업 맞교환)’로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흡수합병될 때 회사를 나와 창업했다. “여기서 미래가 있겠나. 한번 부딪혀보자”는 생각이었다. 막 시작 단계에 있던 국내 LCD 산업의 성장성을 확신했다. LG반도체 설계그룹 동료들과 뜻을 모아 직원 7명의 작은 벤처를 시작했다.

한대근 실리콘웍스 사장

 벤처회사의 살길은 기술뿐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독자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일본 대기업이 주는 기술용역으로 밥벌이를 하면서 기술 개발에 매달린 지 3년. 2002년, 디스플레이 핵심 반도체인 드라이브집적회로(IC) 구조를 독자 개발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칩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구조였다. 회사 기반이 마련되자 다시 새로운 도전을 했다. 또 다른 디스플레이용 반도체인 타이밍컨트롤러 개발에 들어갔다. 일본의 ‘자인’이란 벤처업체가 삼성전자 LCD 물량의 90%를 납품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목표치를 높게 잡았다. “목표는 에너지 소모를 절반으로 줄이는 거다. 거기에 맞춰라.”

 이미 일본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만큼 이를 뒤집으려면 비슷한 제품으로는 어림없다고 봤다. 꼬박 4년이 걸렸다. 에너지 효율 2배, 속도도 두 배 빨라졌다. 국산화 성공은 물론 업계 표준을 새로 만들었다.

 2007년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에서 연락이 왔다. 애플이 새로 개발할 초슬림형 노트북에 들어갈 LCD 규격을 줬는데, 이에 맞출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제품 규격을 살펴본 한 사장은 단번에 “할 수 있겠다. 해보겠다”고 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 ‘맥북에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개발 성공 소식에 애플도 놀랐다. 직접 대전 실리콘웍스 본사를 찾아와 기술력을 살펴보고는 정기적인 기술교류를 제안했다. 이후 두 회사는 1년에 3~4회씩 기술 미팅을 하고 있다. 애플 관련 매출 비중은 지난해 40% 정도로 늘었다.

이노패스트=‘Innovative & Fast-growing’을 조합해 만든 신조어 . ▶차세대 일류 제품 보유 여부 ▶미래 성장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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