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는 왜 이 아마추어 학생들을 맡았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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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품질 좋은 꿀을 떨어뜨릴 때, 그 느낌처럼 연주해 주세요.” 9일 지휘자 금난새씨가 대학생 오케스트라 KUCO 단원들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4악장을 연습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튜바! 악보에 음이 어떻게 돼있죠?”

 9일 오후 서울 성수동의 오케스트라 연습실. 지휘자 금난새(64)씨가 잠시 연주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오케스트라는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시작한 참이었다. 튜바 연주자가 악보에 바싹 다가 앉았다. “라 플랫(flat), 미 플랫입니다.” 지휘봉이 다시 올라갔다. “악보대로 정확하게. 다시 처음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19~26세 사이. 경희대·고려대·서울대·연세대·KAIST·포항공대·한양대 등 25개 대학의 학생들이다. 오케스트라 이름은 KUCO(Korea United College Orchestra). 각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연합체를 구성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어떻게 모인 걸까.

 ◆열정만큼은 프로=“금난새 지휘자께 무작정 e-메일을 보냈어요. 전문 연주자만큼 잘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금이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꼭 지휘해주셨으면 한다고요.” 한양대 국제학과 박형민(24)씨의 말이다. 박씨는 한양대 오케스트라 ‘하나클랑’의 트럼펫 주자다. “몇 년 전 오케스트라 선배들이 전국 대학의 오케스트라 연합을 시도했지만 흐지부지 됐어요. 이번에는 꼭 해보자, 하고 지난해 3월 나섰죠.”

 e-메일을 받은 금씨는 선뜻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에요. 미래의 사회 리더가 될 학생들이죠. 트럼펫 하는 경영자, 바이올린 하는 물리학자가 나와야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9일 연습은 오후 2시 시작해 8시까지 이어졌다.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은 거의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금씨는 “30년 넘게 지휘를 했지만, 연습이 끝나도 이렇게 집에 안 가는 단원들은 처음”이라며 크게 웃었다.

 단원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서울대 의대 류기완(21·첼로)씨는 “즐거움의 밀도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 연주자나 음대 학생들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연주할 기회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일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이에요. 다들 필사적으로 해요. 또 악보에 없는 약속을 100여 명이 한번에 지키는 그 짜릿함에 중독됐어요.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이 화합의 경험은 도움이 될 거라 믿어요.”

 ◆수재급 오케스트라=다양한 학교, 각양각색 전공만큼이나 괴짜 단원도 많다. KAIST 생명과학과의 이준선(21·더블베이스)씨는 피아노 연주가 수준급이다. 지난해 4월 금씨가 시험 삼아 KUCO를 음악축제에 초대했을 땐 스트라빈스키 ‘불새’에서 피아노 파트를 연주했다.

 이씨는 “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더블베이스를 배운 후에는 다른 사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멀티플레잉’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학교는 대전에 있지만, KUCO 연습이 있을 때마다 서울의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진다. “ 음악을 분석하다 보면 과학의 분석방법과 통하는 점을 발견할 때가 많고, 그때마다 전율이 흘러요.”

 금씨는 “분명 연주 실력으로 단원들을 뽑았는데, 머리 좋은 순서로 들어온 것 같아 희한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KUCO는 가히 ‘두뇌파’ 오케스트라다. 단원 100명 중 KAIST(13명), 연세대(12명), 서울대(11명) 순으로 많다. 금씨는 이들과 곧 러시아로 날아갈 작정이다. “러시아의 젊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기회를 줄 겁니다. 한국의 미래 리더가 음악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경험을 쌓도록 말이죠.”

 22일 오후 2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월 12일 오후 5시 포스코센터 아트리움. 신세계 후원. 02-3473-8744.

글=김호정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금난새=1947년 부산생. 현재 유라시안 필하모닉과 인천시립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다.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 작곡과(지휘 전공) 졸업 후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공부했다. 1977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해 화제가 됐다. 귀국 후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국내에 도입,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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