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과 송아지 펀드 만들어 목돈 마련 방법 가르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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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받는 것에만 익숙해진 아이들은 필요한 자산을 스스로 만들고 관리할 줄 몰라요. 나눌 줄 모르니 사회성도 떨어지고요.”

 자기 생각을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수줍어하던 표정도 온데간데없었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왜 경제교육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이용준(19·사진)군의 말은 명쾌했다. 그는 용인외국어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군은 용인의 선한사마리아원 아이들에게 ‘재테크 사부’로 불린다. 봉사의 시작은 평범했다. 봉사 점수를 채우려고 고1 때 리코더를 들고 시설을 찾은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리코더보다는 경제가 더 필요했다. 받는 것에만 익숙한 아이들이 필요한 자산을 만들고 관리하는 걸 몰랐다. 이군은 ‘최소한 내가 알고 있는 상식만이라도 가르쳐 주자’는 생각에 경제교육 봉사를 시작했다. 벌써 4년째다. 이제는 학교 친구, 후배들과 의기투합해 20여 명이 보육원 두 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이군은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라 투자에 관심이 많았다. 고1 때부터 용돈을 주식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2학년 때는 ‘이콜리시(economy와 english의 합성어)’란 영어 경제교육 봉사동아리를 조직했다. 지난해 푸르덴셜생명이 주관한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1983년 금융약자에게 담보 없이 소액대출을 하는 그라민은행을 설립한 방글라데시의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가 그의 롤모델이다.

 선한사마리아원의 김종진 교사는 “금융회사에서 하는 경제교육은 어른이 보기에도 딱딱하고 어려운데 용준이의 수업은 돈의 흐름과 경제원리를 동화책 읽듯이 쉽게 설명해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2009년 5월에 이군은 시설 아이들을 대상으로 경제퀴즈대회를 열었다. 몇몇 기업인이 상금을 내놨다. 200만원이란 거금이 모였다. 대회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 5월 열린 2회 대회에는 참가자가 용인 지역 보육원 네 곳의 아이들로 늘었다.

 이군은 여기서 더 욕심을 냈다. 아이들에게 직접 돈을 관리하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그는 지난해 8월 “펀드를 만들어 돈을 직접 투자해 보자”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아이들 50명과 보육원 교사, 후원자들이 푼돈을 모아 77만9000원의 종잣돈으로 펀드를 만들었다. 펀드 이름은 ‘희망우’. ‘벗 우(友)’ 자와 근면함의 상징인 ‘소(牛)’의 뜻을 더해 ‘여럿이 함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운용은 이군이 맡았다. 주식 등에 투자해 3개월간 5%(3만8950원)의 수익이 났다. 이군은 수익금으로 친환경 티셔츠 판매사업을 제안했다. ‘에코키퍼(Eco Keeper)’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티셔츠에 친환경 염료로 상표를 찍어 지인과 보육원 방문자들에게 팔았다. 수익금이 90만원으로 불었다.

 돈이 불어나는 것을 신기해하는 아이들에게 이군은 “사람들에게 받았던 만큼 베풀자”고 제안했다. “주는 것도 받는 것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22일 선한사마리아원 아이들의 이름으로 성금 90만원이 용인시 남사면사무소에 도착했다. 면사무소 측은 이 돈을 저소득 다문화가정 세 곳에 전달했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시로부터 받은 우수시책 발굴상금 50만원을 선한사마리아원에 기부했다. 강구인 남사면장은 “한 고등학생의 작은 꿈이 돌고 돌아 정(情)을 낳았다”고 말했다.

 이군은 외국 대학으로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공부하고 돌아와 아이들과 송아지에 투자해 목돈을 마련해 볼 생각입니다. 그때는 구제역이 사라지겠죠.”

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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