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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2] “북한이 공격했는데 … 한국 상황 괜찮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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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와의 인터뷰는 멤버들의 ‘매우 사적이고 삼엄한 호텔방’에서 이뤄졌다. 멜버른 시내에 위치한 크라운 호텔엔 스위트룸으로만 구성된 층이 있다. 이곳에 머문 멤버들에게 접근하려면 일반 투숙객용이 아닌 별도의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인터뷰는 각 멤버의 방을 돌며 1명씩 ‘스페셜하게’ 진행됐다. 주어진 시간은 멤버당 30분이었지만, 좀 길어진다고 저지하지 않았다. 멤버들은 매우 진지했고 매너도 좋았다. 개인별 인터뷰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글렌 프라이의 방은 코너에 마련된 스위트룸이었다. 멜버른의 전경과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뉴밸런스 운동화를 신은 글렌은 콜라 잔에 얼음을 채우고 있었다. 63세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한국 상황은 괜찮은가”라고 물었다.

● 한국 상황이라니요.

 “정치적 상황 말입니다. 북한이 공격을 했잖아요.”

●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한 걸 말하는 건가요.

 “주민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죽은 사람도 있는 걸로 압니다.”

● 매우 구체적으로 알고 있군요.

 “김정일이 아들의 위치를 격상시키기 위해 이번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습니까.

 “난 가수지만 매일 뉴스를 챙겨요. 날씨 정보도 매일 보고, 국제 뉴스도 계속 읽습니다. 한국에 공연 가서도 뉴욕 타임스를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마도 CNN·BBC 등 뉴스 채널이 전한 북한의 연평도 공격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포탄이 민가에 떨어져 검은 연기가 치솟는 모습을 봤다면 한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는 이들 머릿속의 ‘한국 이미지’는 아주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티머시 슈밋도 “남북의 대치 상황이 염려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처음 가는 곳이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그러던 중 연평도 소식을 듣게 됐다”며 “한국과 북한의 주민 그 누구도 다치지 않길 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그들의 사전 지식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글렌 프라이는 미국 무대에서 활동 중인 ‘박세리’와 ‘최경주’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며 거론했다. “매우 뛰어난 선수며 미국에서 사랑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 박(Park·박찬호) 등 좋은 선수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고 했다. 그는 ‘코리안 바비큐(불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했고,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같은 한국말을 제대로 배웠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노래 중 이글스의 셋리스트(set-list·공연 선곡)에는 없는 게 있다. 바로 ‘새드 카페(Sad Caf<00E9>)’다. 리더 격으로 셋리스트를 정하는 위치에 있는 돈 헨리와 글렌 프라이는 “한국에서 ‘새드 카페’가 인기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귀띔했다.

● 한국 팬들은 새드 카페를 듣고 싶어합니다.

돈 헨리=“그동안 ‘새드 카페’는 무대에 올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연주하기 불편한 곡이죠. 그런 노래까지 사랑해주다니 놀랍습니다. 모든 건 글렌이 결정하는데, 제가 건의할게요. 한국 팬들이 사랑하는 곡이라면 당연히 검토해 봐야죠.”

● 한국인이 좋아하는 곡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돈 헨리=“아시아인들은 부드럽고 감성적인 곡을 좋아합니다. 꼭 한국만 그런 건 아니죠. 일본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부르면 너무나 조용합니다. 오직 곡에만 몰입하고 싶은 거죠. 하지만 미국에선 정말 시끄러워요. 우리는 그런 공연의 분위기에서 각국 팬들의 성향 같은 걸 느끼죠.”

● 티머시가 부른 ‘아이 캔트 텔 유 와이(I can’t tell you why)’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보컬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곡을 한층 빛내는 것 같습니다.

티머시=“1977년 돈과 글렌이 그룹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고, 78년부터 함께 작업했죠. 이글스는 밴드 모두가 보컬로 참여합니다. 마침 내게도 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이후 바로 작업에 들어갔고, 1년 반이 지난 뒤 모두 모여 그 곡을 들었습니다. 돈이 들은 후 ‘이 곡이 너를 세상에 알리게 될 거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한국에서 이글스 노래는 오직 발매된 음반으로만 들을 수 있다. 온라인 판권은 모두 막혀 있다. 돈 헨리가 이에 대해 구체적 답변을 해줬다.

● 많은 한국 팬이 이글스 노래를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듣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돈을 주고 사려 해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온라인 판매를 고려하지는 않는지요.

 “시대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디지털 유통이 음악 산업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불법 복제가 만연하면서, 음악인들이 오랜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은 이제 공연밖에 남지 않았어요. 하지만 돈이 되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룹은 제한돼 있고요. 이글스는 축복받은 경우죠. 결국 아티스트는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콘텐트 제공업자만 남게 될 겁니다. 하지만 한국 팬들이 원한다면 음반사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팬은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야죠.”

● 이글스의 결정은 한국의 인터넷 문화와도 관계 있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2006년 글렌과 내가 한국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데스페라도’를 광고 음악으로 사용했죠.”

 돈은 한국이 저작권에 대해 엄격하지 않다는 걸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그는 갈수록 작아지는 디지털 기기에 대해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예전에는 큰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어요. 우리는 정성스럽게 녹음을 했죠. 우리의 모든 연주가 잘 담기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축소된 기계에서 나오는 작은 이어폰으로는 최상의 음악을 들을 수 없어요. 아티스트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음악을 팬들이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세상이 된 거 같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 음악 자체보다 이동성과 편리성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죠.”

월드스타로의 도약

원 오브 디즈 나이츠(One of these nights, 1975)

창업 공신 버니 리든이 이 앨범을 끝으로 탈퇴했다. 음악 세계가 다르다는 이유였다. 빈자리는 기타리스트 조 월시가 채웠다. 이글스 곡조는 초기 컨트리 스타일이 사라지고 훨씬 더 강렬해졌다. 이 앨범도 뜨거운 지지를 받았고, 해외에서 인기를 끌며 이글스를 ‘월드스타’로 만들었다.

‘아메리칸 드림’의 그림자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 1976)

앨범에 수록된 ‘호텔 캘리포니아’는 76년 발표 뒤에 빌보드 1위에 올랐다. 말할 나위 없는 이글스의 대표곡이자 록 음반사에 빛나는 명곡이 됐다. 리드 보컬은 돈 헨리가 맡고, 가슴 저린 그 유명한 기타 듀엣 연주는 돈 펠더와 조 월시가 담당했다. 알듯 모를 듯 묘한 가사는 논쟁을 유발했다. 돈 헨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호텔 캘리포니아가 뭘 뜻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이 노래는 기본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부분을 그리고 있다. 미국 사회의 극단 같은 것도 담고 있고.” 창립 멤버 마이스너는 이 음반을 끝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겠다며 네브래스카주로 귀향키로 했다. 빈자리는 티머시 슈밋이 대신했다.

불신과 해산

더 롱 런(The long run, 1979)

창공을 날던 독수리도 시련을 피할 순 없었다. ‘더 롱 런’ 앨범이 ‘호텔 캘리포니아’에 못 미친다는 평단의 비난이 나왔다. 성공에 도취됐기 때문일까. 무엇보다 ‘롱 런’이란 앨범명과 달리 멤버들이 삐걱대고 있었다. 80년 7월 31일 캘리포니아주의 롱(Long) 비치. 훗날 ‘롱(Wrong) 비치의 긴 밤’으로 알려진 악몽이 있었다. 상원의원 선거 지지 공연을 펼쳤다가 돈 펠더와 글렌 등 일부 멤버 간 불화가 고조됐다. 독수리의 추락을 알리는 밤인 듯했다. 80년 11월에 나온 ‘이글스 라이브’ 앨범의 녹음은 돈 헨리와 글렌이 맡았지만 둘은 동부와 서부에 따로 떨어져 ‘특급우편’을 주고받으며 작업물을 정리할 정도였다. 독수리는 끝내 해체의 아픔을 겪고 만다.

재결합

“우린 오랜 휴가를 떠났던 것”(1994~현재)

해산 14년 만에 컨트리 음악 동료들이 이글스를 기리는 헌정 앨범 ‘커먼 스레드(Common Thread)’를 내놓았다. 뮤직 비디오 제작 과정에서 이글스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멤버들 마음도 흔들렸다. 마침내 복귀 앨범 ‘헬 프리지스 오버(Hell freezes over·94)’가 나왔다. 복귀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등극했다. ‘겟 오버 잇(Get Over It)’을 포함한 신곡 2개는 ‘톱 40’에 올랐다. 투어가 96년까지 이어지는 동안 앨범은 미국에서만 600만 장이 팔렸다. 재결합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이글스 공연의 티켓 가격은 껑충 뛰며 기록을 경신했고, 멤버들의 공연은 지금까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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