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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지난해 ‘김복남’같은 영화 올해는 어디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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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기선민 기자

본지는 최근 제작·투자·평론 분야 영화인 14명에게 올해 한국 영화계를 주도할 기대작을 선정해달라고 청했다. ‘마이 웨이’ ‘고지전’ ‘7광구’ 등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작이 주로 뽑혔다. <5일자 26, 27면>

  이와 함께 지난해 예상을 깨고 두각을 나타낸 작품, 이른바 ‘2010년의 발견’도 꼽아달라고 했다. 올해 충무로에 이런 ‘발견’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영화 투자사들이 좀더 ‘모험’을 감수했으면 하는 희망도 있었다. 조사 결과 가장 많이 언급된 작품 중 하나는 저예산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이었다. “돈도 빽도 없는 영화 한 편이 전세계를 흔들어놓았다”(‘해운대’ 윤제균 감독)는 평처럼, 이 영화가 관객과 만난 건 거의 ‘맨땅에 헤딩’이었다.

 ‘김복남’은 지난해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을 들썩이게 했다. 하지만 캐스팅, 투자, 개봉까지의 과정은 파란만장했다. 무명 신인감독, 비(非)스타캐스팅이 걸림돌이었다. 주요 투자배급사들은 “영화는 재미있는데 관객들이 안 좋아할 것 같다”며 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군소배급사를 통해 개봉한 ‘김복남’은 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여 손익분기점을 거뜬히 넘겼다. 장철수 감독은 각종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며 설움을 씻었다. “김혜수도 전도연도 마다한” 작품에서 열연한 주연배우 서영희는 생애 첫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돈도 빽도 없는 영화만큼이나 충무로의 천덕꾸러기가 또 있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다. 기획 자체가 안 된다. 심각한 편향이다. 수 년째 남자배우 두 명을 내세우는 ‘남자 투톱영화’가 대세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배우 전도연이 ‘하녀’를 찍으면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고 나 작품 선택 폭이 굉장히 넓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말했을까.

 하지만 지난해 초 김윤진·나문희·강예원 등 여배우들이 주연으로 나선 ‘하모니’는 ‘여자영화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관객 300만 명을 넘겼다. ‘방가? 방가!’‘내 깡패 같은 애인’도 ‘외국인 노동자의 애환’‘동네깡패와 취업준비생의 사랑’이라는 비주류적 소재에도 관객과 평단의 갈채를 끌어냈다.

 현재 충무로는 주도권이 제작사에서 대기업 중심의 투자배급사로 거의 넘어갔다. 전주(錢主)의 발언권이 강해지다 보니 창의적 기획보다 ‘안전 우선’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흥행을 두고 뭐라 하는 게 아니다. 부작용이 눈에 보여서 그런다. 무엇보다 한 장르가 ‘대박’나면 쏠림 현상이 심하다. ‘미투(me too)’ 전략이 만연하면 다양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제작자들이 투자를 따내기 위해 소수 스타들에게만 목을 매는 것도 문제다. ‘입대만 하지 않았다면 올해 강동원(’의형제’‘전우치’)이 시나리오를 싹쓸이했을 것’이라는 농담, 솔직히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 제대한 조승우와 제대를 앞두고 있는 조인성에게 요즘 시나리오가 폭주한다는 소문, 사실이 아니길. 2011년 충무로에서 좀더 많은 발견과 모험, 진화가 이뤄졌으면 한다. ‘동반 성장’은 경제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되레 문화 쪽이 더 절박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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