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너 “축하파티는 노! … 하객도 줄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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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존 베이너

야당인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John Boehner·61)가 이끄는 제112대 미국 하원이 5일(현지시간) 공식 출범했다. 미 의회는 이날 개원식을 열어 베이너 의원을 하원의장으로 선출했다. 상원도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통해 새로 선출된 상원의원 13명의 선서를 시작으로 새 원구성을 마쳤다. 이로써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정부 출범 2년 만에 민주당의 상·하 양원 지배에서 공화당(하원)-민주당(상원) 간 견제와 균형체제로 바뀌었다.

 새 의회가 출범한 날 모든 시선은 베이너 하원의장에게 쏠렸다. 하원의장은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상원 의장 겸임)에 이어 대통령직 승계 서열 2위다. 베이너 의장은 개원 첫날부터 자기 절제의 솔선수범을 보이면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그는 과거부터 관행적으로 진행돼 왔던 하원의장 취임 축하행사를 대폭 축소하거나 취소시켰다. 자신을 위한 기념 콘서트를 비롯, 각종 화려한 축하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역구인 오하이오주에서 베이너가 의장으로 선출되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워싱턴 의사당을 찾은 가족·친지들도 11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모두 베이너의 젊은 시절처럼 어렵게 살고 있는 노동자 계층의 사람이었다고 워싱턴 포스트(WP)는 전했다.

 

낸시 펠로시

 이 같은 모습은 4년 전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의장이 취임했던 때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이탈리아계인 그는 이탈리아계 정치인으론 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워싱턴의 이탈리아대사관에서 취임 축하파티를 열었다. 지역구인 캘리포니아 주민뿐 아니라 고향 볼티모어 주민들도 초대했다. 그는 볼티모어에서도 파티를 열고, 유명 가수들이 참여한 콘서트를 한껏 즐겼다.

 펠로시는 평소 명품 옷을 즐겨 입어 공화당으로부터 ‘아르마니를 입은 좌파’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진보적인 공약을 내건 민주당 의원이 명품 패션 브랜드의 대명사 격인 아르마니를 입는 것에 대해 비꼰 것이다. 아르마니는 펠로시 덕분에 브랜드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베이너 의장은 이날 의장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대부분 거절했다. 지난달 중순 CBS의 시사 대담 프로그램 ‘60분’에 출연, 잡역부로 일하면서 학비를 벌던 젊은 시절과 ‘미국의 꿈’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 전부였다.

대다수 미국 언론은 “베이너 의장이 자기를 내세우기보다는 낮은 자세로 새 의회를 이끌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공화당 전략가 데이비드 윈스턴은 “베이너는 자신보다 정책과 현안 해결책이 부각되길 원한다는 점에서 기존 정치인들과 크게 다른 인물”이라며 “그는 미국인들이 말보다는 결과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이너 의장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완고한 정통 보수주의자다. 그는 의장으로서 이 같은 소신을 강하게 펼쳐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의회 출범 다음 날인 6일 의원들의 헌법 조문 낭독행사를 벌이는데 이어 곧바로 의회 예산 3500만 달러를 삭감하는 법안을 상정해 통과시킬 예정이다. 의회가 먼저 긴축에 앞장선 뒤 불요불급한 정부의 지출을 최대한 막아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 베이너가 지명한 공화당 소속 하원 감독 및 정부개혁위원장은 위키리크스 폭로 사태와 아프간 전쟁에서의 부패 문제 등 여섯 가지 사안과 관련, 오바마 정부의 활동에 대한 의회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베이너 의장은 1991년 초선 의원 시절 민주당 의원들의 부패를 폭로한 ‘7인의 갱(Gang of Seven)’으로 활약했다.

 공화당 지도부 관계자들은 “베이너의 정치철학 핵심은 평범한 미국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베이너 의장이 자신의 생각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게 강해 초당적인 의회 운영의지가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가 차기 대선에서의 공화당 집권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민주당과의 타협을 ‘옳지 못한 일’로 여기고 있다는 게 오바마 정부나 민주당의 우려다. 오바마 대통령이 4일 하와이 휴가 일정을 끝내면서 베이너에게 “2012년 대선 선거운동을 위한 시간은 아직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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