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2대째 김치 한길만… 아리랑 김치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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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주 잉글우드에 있는 ‘아리랑 김치’ 사무실 겸 조리공장. 길가 옆 업체명을 알리는 큰 간판에 적힌 ‘GABOH inc’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제품명은 아리랑이지만 업체명이 ‘가보(家寶)’였던 것.

남편 오시정(64)씨와 함께 30여 년 동안 ‘김치’라는 한우물만 파온 창업자 오경순(60)씨에게 물었더니 “대대손손 ‘참 김치’를 미국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의미로 ‘가보’라는 회사명을 지었다”며 “다행히 아이들이 내 뜻을 이해해줘 함께 일을 하고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오씨의 아들 오현석(33)씨는 이미 2006년부터 업체의 대표이사직을 맡아 오고 있고 2년 전부터는 딸 오민경(28)씨도 합류해 마케팅과 기획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현석씨는 아리랑만이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 오씨의 ‘손맛’을 전수받고 있었다.

“아리랑 김치의 비밀인 어머니의 소스(김칫소) 버무리는 방식을 전수받기로 했죠. 지금은 대표 상품인 맛김치와 포기김치 만드는 법에 대해 익히고 있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셨지만 사업적인 측면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에 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손맛을 계승한다= 현석씨는 매일 어머니 오씨와 함께 김칫소 버무리는 작업을 함께 한다. 직접 배추 등을 살피고 신선하지 않은 원료를 거르는 어머니의 노하우도 배우고 있다.

현석씨가 오씨의 계승자가 된 건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 현석씨는 고교 졸업 뒤에 다니던 대학까지 포기하고 친척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업체 운영과 요리 등에 대해 익혔다고 한다. 특히 요리를 배우고 싶어 수년 동안 이태리와 프랑스 등을 배낭여행을 하며 음식 문화를 살펴보는 열정을 보였다.

현석씨는 “음식 관련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 영향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궁극적으로는 아리랑 김치에 공헌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유럽 여행을 통해 김치와 서양음식과의 합일점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현석씨는 어머니의 김칫소에 샐러드에 사용되는 식초 등을 사용해 서양인 입맛에 맞는 방식을 찾고 있다. 그는 “전통방식보다 조금 변형된 ‘하이브리드(Hybrid) 김치’를 타민족 친구들이 맛을 보며 좋아한다. 언젠가 타민족 공략에 활용됐으면 한다”웃었다.

◇’건강식’ 개념으로 타민족 공략=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민경씨는 졸업 뒤 마케팅 관련 일을 했다. 이러한 예술과 마케팅이라는 배경을 살려 그는 지난해부터 타민족에게 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아리랑 김치는 대형 한인마켓에 납품하기보다 단골과 식당 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 개척은 지상과제이기도 했다.

다행히 브루클린과 맨해튼의 식당과 마켓 등 아리랑 김치를 주문하는 고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올해 브루클린의 유명식당인 전통 레스토랑 ‘맨해튼 인’은 에피타이저 메뉴에 아리랑 김치 총각김치와 포기김치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8개의 지점을 두고 있는 유기농 전문 마켓 ‘킴스 밀레니엄’도 아리랑 김치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최근 ‘김치’는 최고 건강식으로 꼽히기 있어요. 자연 유산균 때문이죠. 특히 우리 김치 맛을 본 요리사들이나 마켓 주인들은 대부분 거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와요. 한인들에게는 주식이지만 타민족들에게는 건강을 위한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요.”

민경씨는 각종 기관과 학생에 김치를 기부하는 아이디어도 냈다. 특히 올 봄 유명 요리학교 CIA 한인학생회의 ‘김치 요리 이벤트’에 김치를 제공해 학생들이 김치 볶음밥과 잡채 등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김치사랑= 현석·민경 남매는 한인 2세다. 대부분의 2세들과는 다르게 이들은 어릴 때부터 김치를 좋아했다고 한다. 학교 끝나면 의례 아리랑 김치를 찾아 생활을 했다고. 이들은 모두 “단 한번도 부모님이 김치 사업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민경씨의 어릴 시절 별명은 ‘김치걸’이었다. ‘김치공장’을 운영하는 집의 자녀라는 걸 친구들도 알았기 때문이다. 민경씨는 “한인아이들도 특별이 놀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김치걸이라는 별명이 기분나쁘지 않았다”며 “오히려 학교 끝나면 한인 친구들 3~4명이 항상 우리 공장에 같이 왔다. 김치를 함께 먹기 위해서였다”고 웃었다.

현석씨의 김치 사랑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었다. 어머니 오씨는 “고등학교 때 학교에 아시안 페스티벌이 있는 학부모들이 갈비, 잡채 등은 준비했는데 김치는 냄새가 난다며 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석이가 어느날 와서 ‘왜 김치를 내놓지 못하냐’며 묻는 걸 보며 얼굴이 벌개졌다”며 “그 때 깨닫고 백김치를 만들어 페스티벌에 보냈더니 참가자들이 좋아했다”고 말했다.

물론 김치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을 때도 있었다. 현석씨는 “흑인 친구들이랑 집에 왔는데 한 친구가 우리집 냉장고를 열더니 처음 맡는 김치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는 걸 보며 무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모님이 만드시는 한국 음식이라고 먹어보라고 했더니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한시름 놨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이처럼 김치 터부시하지 못한 것은 오씨가 김치사랑을 몸소 보여줬던 것이 컸다. 남매는 모두 “어릴 때부터 새벽에 나가 밤 11시까지 공장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민경씨는 “1994년 어머니께서 유방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으시면서까지 공장에서 일하시는 것을 빼지 않으셨다”면서 “단순히 사업적으로가 아니라 김치에 대한 사명감 없이는 못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이런 자녀들을 오씨는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계속되는 불경기와 배추 등 재료값이 올라가 매출이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인데 자녀들의 지원은 든든하기만 하다고.

“전 하던 대로 일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울타리 역할만 해주고 싶어요. 아직 아이들이 완전하지 않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김치 사랑이 더해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웃음)

남매는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아리랑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경씨는 “선도가 떨어지는 배추가 왔을 때 어머니께서 배추를 돌려보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 때 고객이 오면 이유를 설명하시고 며칠 뒤에 오라고 하셨던 장면이 ‘아리랑 김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면서 “부모님의 고집스러운 전통에 젊은 감각을 입혀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석씨 역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CIA 등 학교를 통해 ‘김치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뉴욕중앙일보= 강이종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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