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4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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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클레멘타인 9

“정오가 되면 큰 문을 활짝 열어놔!”
평소와 달리 백주사의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중요한 손님들이 올 거야. 노과장 차가 선두에 있을 테니, 자네는 그냥 공손하게 절하면서 차를 통과시키면 돼. 오늘 점심은 손님들 돌아간 뒤 먹을 테니 자네는 부를 때까지 문을 지켜. 손님들한테 되도록 얼굴은 또렷이 뵈지 말고.”
“예, 주사님!”
나는 백주사가 눈앞에 있는 듯 머리를 조아렸다.

어느 방향에선가 그때 맑은 선율이 들렸다. 명안진사에 나오기 시작한 후부터 가끔 들었던 플루트 선율이었다. 얼마 전 내가 무슨 피리 소리냐고 묻자, 노과장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면서 “플루트도 몰라요?” 했고, 나는 “아, 가로로 부는 서양피리!” 했다. 무슨 곡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애기보살 현주가 부는 플루트 소리였다. 경쾌하고 맑아서 아침 햇빛이 솔잎들 하나하나 가볍게 건들어서 내는 선율 같았다. 소리가 울려나오는 곳은 이사장이 머무는 명안전이나 혹은 명안전 주위의 소나무숲 어디인 듯했다. 애기보살의 플루트 소리를 들으면 늘 마음속에 등불을 하나 켠 느낌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명안진사에 머무는 모든 이가 그럴 터였다. 천상의 소녀같이 어여쁘고 해맑은 애기보살의 연주가 아닌가.

나는 삽을 든 채 실눈을 뜨고 소나무숲을 보았다.
애기보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얼굴은 뵈지 말라’는 백주사의 말에 언짢아졌던 기분은 플루트 소리로 이내 말끔히 씻겼다. 한 곡이 끝나고 나서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른 곡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나도 알 만한 쉬운 곡이었다. 머리를 끄덕이면서 애기보살의 플루트 소리에 맞춰 나는 입을 금붕어처럼 뻥긋뻥긋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바로 ‘클레멘타인’이라는 곡이었다.

관음봉 기슭 무허가 집에서 아버지와 살던 시절에 산 속을 혼자 헤매다가 암벽 위에 누워 자주 흥얼거리기도 했던 노래였다. 여린에게 가르쳐준 기억도 있었다. 여린은 가사가 너무 쓸쓸해 싫다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내가 ‘개백정’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것처럼, 그녀는 눈먼 아버지와 살고 있었던 자신의 처지를 그 노랫말에서 떠올렸을 것이었다. 그 무렵 본 영화 중에 <황야의 결투>라는 서부극이 있었고, ‘ 클레멘타인’이라는 선율을 가장 감동적으로 처음 들은 건 그 영화 속에서였다. 황량한 황무지 위로 그 선율이 흐르는 장면에선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19세기의 미국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좇아 서부로 왔으나 끝내 가족만 잃고 빈손으로 쓰러져야 했던 광부들 사이에서 불리기 시작한 노래였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 애기보살은 그 곡을 끝까지 연주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소나무숲이 선율을 따라 일렁거렸다. 햇빛이 아주 좋은 날이었다. 날씨도 모처럼 따뜻했다. 플루트 소리가 끝나고 얼마 후 애기보살이 명안전에서 나와 식당건물 쪽으로 뛰어 내려가는 게 보였다. 묶은 머리가 폴짝폴짝 뛰면서 애기보살의 뒤꼭지를 따라갔다. 멀었지만 내 눈엔 마치 머리를 묶은 붉은 끈이 환히 보이는 듯했다. 예전의 여린을 보는 느낌이 들어 가슴속에 파동이 일었다. 손차양을 한 채 실눈으로 애기보살을 따라가고 있는데, 포클레인 젊은 기사 서씨가 삽을 들고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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