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엔 붕어가 없다? … 펀드 넷 중 하나는 겉 다르고 속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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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예상 배당수익률과 이익·배당의 안정성과 성장성, 밸류에이션(저평가도) 등을 고려해 종목을 선정한다’.

 삼성자산운용의 ‘배당주 장기 증권투자신탁 1호’ 펀드 투자제안서(상품 설명서)에 나온 내용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배당 종목을 골라 담는다는 게 제안서의 골자다.

 하지만 실제 운용 방식은 다르다. KT나 SK텔레콤 같은 고배당주도 담고는 있다. 그러나 지난 9월 말을 기준으로 봤을 때 비중이 제일 높은 건 삼성전자(9.9%)와 현대차(6%), SK에너지(4.8%), KB금융(4.3%), 현대모비스(4%) 등이었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올해 예상 배당수익률이 모두 유가증권 시장 평균 이하다. KB금융은 올해 이익이 거의 나지 않아 배당을 못 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우리투자증권 문수현 펀드 애널리스트는 “배당주 펀드라기보다 기업 성장성에 중점을 둔 성장형 펀드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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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자산운용의 ‘하이 지주회사 플러스’도 그렇다. 제안서에서는 ‘지주회사 또는 지주사 전환 예상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이 펀드는 삼성전자(11.6%), 현대차(5.2%), 현대중공업(3.9%) 등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주회사에만 선별 투자하는 테마 펀드가 아니라 코스피지수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펀드가 됐다.

 국내 주식형 펀드 넷 중 하나는 이름이나 투자제안서의 설명과 다르게 운용을 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펀드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우리투자증권과 함께 ‘PSR’이라는 펀드 분석 시스템을 이용해 118개 가치·배당·성장주 펀드들의 운용 실태를 들여다본 결과가 이랬다. PSR은 펀드가 운용 원칙을 지키는지, 수익을 내기 위해 지나치게 큰 위험을 무릅쓰진 않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상당수 외국의 자산운용사들이 사용하는 분석 기법이다.

운용 원칙을 지키지 않는 펀드는 가치주 펀드 12개 중 3개, 배당주 펀드 8개 중 3개, 성장주 펀드 98개 중 25개 등 총 31개(26.3%)였다.

 집계에 포함하지는 않았으나, 특별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운용하는 테마 펀드 중에도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상당수였다. 미래에셋의 ‘5대그룹 대표주’는 투자 종목의 절반 이상이 5대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설명서와 다르게 운용을 하는 이유는 수익률 때문이었다. ‘배당주 장기…’를 운용하는 삼성자산운용 측은 “올해 배당주들의 주가 흐름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며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올해 상승을 주도한 종목들을 담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우리투자증권 김우재 연구원은 “운용 방식을 바꾸면 안정을 중시하는 투자자가 의도와 달리 고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며 “운용 스타일을 지키는 게 투자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한동안 변동성이 심할 것으로 생각해 제안서를 보고 가치형 펀드를 택했는데, 실제는 공격적인 성장형 스타일로 운용하는 펀드여서 투자자에게 뜻하지 않은 손실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본지와 우리투자증권은 펀드 유형별로 원칙을 잘 지키는 펀드들도 뽑았다. 가치형으로는 ‘한국밸류10년’, 배당주 펀드 중에서는 ‘세이고배당’, 성장형으로는 ‘미래에셋3억만들기솔로몬’, 테마형으로는 ‘하나UBS IT코리아’ 등이 꼽혔다. 수익률은 보지 않고 단지 운용 원칙 준수 여부만 따진 것이다.

권혁주 기자

◆어떻게 분석했나=가치·배당주 펀드는 순자산 100억원 이상, 성장형은 500억원 이상 펀드를 골랐다. 가치형 등의 구분은 우리투자증권이 직접 운용사에 확인했다. 펀드가 투자한 종목은 지난 9월30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각 종목들의 주가 저평가도, 성장성, 배당성향 등을 산출한 뒤 이를 종합해 펀드가 내세우는 유형과 맞아떨어지는지를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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