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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속빈 강정'에 여야 서로 속앓이

중앙일보

입력

9월9일 국민회의의 신당 발기인 명단 발표로 3당의 새 인물 영입작전이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그러나 국민의 심화된 정치불신으로 3당의 인물 영입 그물망에서 대어 구경은 좀체 하기 힘든 실정이다. 3당은 빈약한 어획량을 단시간에 만회하기 위해 고단위로 처방된 떡밥을 준비중이나 결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신통찮은 인물 영입 성과를 놓고 고민에 빠진 3당의 속내를 들여다 본다. [편집자]

9월9일 오전 8시를 전후해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 각 사무실에는 똑같은 내용의 팩스가 일제히 들어왔다. '발기인 명단'이란 제목이 붙은 석장짜리 문서였다. 그 문서에는 당 안팎의 많은 인사들이 궁금해하던 국민회의 신당 창당 발기인의 면면이 간략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만섭·김민석·김영환…등 일련번호가 매겨진 명단을 차례로 훑어보던 국민회의 당직자들은 간간이 숨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19명의 ‘당내 인사’중 중진 인사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똑같이 19명인 ‘당외 인사’들도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망라하려는 노력의 흔적은 보이는데 창당 작업에 빠져서는 안되는 ‘이데올로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외부 인사들이 전문가인지는 모르지만 각 분야의 주도세력이라기보다 ‘개인’의 명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일부 당직자들은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 ‘이게 발기인 명단이 맞느냐’며 새삼 확인해 보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같은시각 청와대비서실 풍경도 비슷했다. 발기인 명단이 공개된 직후 청와대 보좌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일부 인사의 발기인 참여는 문제가 있다’는 식의 보고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고에 김대통령도“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공감했으나 이들을 교체하자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명단을 발표한 마당에 당사자들을 두번 죽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직접 명단을 챙겼다는 발기인을 두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청와대와 당, 여권의 외곽 채널까지 총동원해 추천받은 3백여명의 명단을 놓고 철저한 검증을 했다는 뒷얘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자 뒤따라 나온 소문이 ‘일부 인사는 처음 명단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김대통령이 애초에 낙점하지 않은 인물이 어느 단계에서 끼어들었다는분석이다.

국민회의 안팎에서는 이를 동교동계 내부 갈등의 산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실 이 발기인 선정 작업은 실무적으로 한화갑 사무총장과 정동채 기조위원장 그룹이 주도하는 양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이 작업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의 또 다른 동교동계 당직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반발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주도적 흐름에 ‘반발’했던 당직자들의 생각은 한영애 의원의 발기인 참여에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당내 여성계 대표’라는 것이 당의 공식 설명이었지만 속내를 잘 아는 인사들도 별로 믿으려 하지 않는 분위기다. 상대방의 공격을 ‘거친 입’과 ‘저돌적 행동’으로 앞장서 막아내는 한의원의 전방위적 수비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국민회의는 9월6일 보는 시각에 따라서 크게 보일 수도 있는 하나의 사건을 만났다. 이날 서울 잠실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렸던 국민회의 의원 연수회에서 당내 민주화의 필요성은 물론 ‘가신’을 향한 불만토로를 넘어 금기와 같은 ‘DJ 2선 후퇴론’까지 거침없는 발언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동교동계 일부에서는 이같은 껄끄러운 발언이 발기인 회동에서 다시 돌출할 것을 우려해 ‘군기반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의원에게 그런 기대를 했다는 것이다.

국민회의의 신당 창당 발기인 명단을 두고는 여기저기서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한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내걸었던 ‘개혁적 신당’이라는 색채와는 거리가 먼 발기인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실상 신당의 +α 그룹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는 국민정치연구회 출신들의 발기인 참여가 저조한 편이다. 관련 인사로는 이재정 이사장과 한명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지도위원, 이창복 민화협공동대표 등이 고작이다. 한명숙 지도위원과 이창복 대표는 국민정치연구회가 조직한 ‘21세기 정치개혁을 위한 국민대토론회’ 제안자 16명 중에 포함돼 있는 인사들이다.

이들 말고도 16명의 ‘어른’ 중에는 박형규 목사, 한완상 전 부총리, 구중서 민예총 회장, 이종훈 중앙대 총장, 이돈명·유현석 변호사 등 쟁쟁한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당 창당 발기인으로는 하나같이 무게가 넘치는 인사들이다.

국민정치연구회의 한 관계자는 “전국 순회 토론회를 통해 의외의 새 인물이 많이 발굴될 것으로 본다”면서 10월 중순까지는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들 16명의 ‘어른’들이 신당 창당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또 총선 출마까지 이어질지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이와 함께 국민회의 신당과의 성공적 접합을 추진하고 있는 이 조직의 실무 주역들인 최규성 사무총장, 유시춘 정책실장이 총선에 출마할 것인지도 지금으로선 매우 궁금한 대목 중 하나다.

또 ‘철저한 검증’이란 말이 무색하게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은 한나라당 후원회 부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밝혀져 정치 도의상의 문제가 제기되는 등 발기인 선정과정의 허술한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당이 애초에 발표한 창당 일정도 한 청와대 비서관이 별다른 고민 없이 김대통령에게 보고했던 안을 그대로 수용했다가 며칠만에 수정하는 소동 아닌 소동을 빚었다.

신당 창당 작업이 이런 결과를 빚은 데는 이를 전담할 태스크포스(TF)
팀이 없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는 당직자들이 적지 않다. 신당을 창당하는 작업마저 김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원래 김대통령이 생각하는 신당 창당은 정계 대개편 의도를 갖고 구상됐다. 그런데 DJP의 워커힐 비밀회동이 드러나 자민련과의 합당 추진이 무산되면서 결정적으로 그 구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김대통령은 지금도 정계 대개편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신당 창당의 밑그림이 있을 리 없었다. 신당 창당은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짓는 격이어서 주먹구구식이 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창당 논의 초기에 신당 참여 예상자로 주로 거론됐던 인사가 인기인 위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시 이름이 오르내렸던 영화 '용가리' 제작자로 신지식인 1호로 꼽혔던 개그맨 심형래씨,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씨, 축구 해설가 신문선씨, ‘신바람 건강학’의 황수관 교수, 영화배우 안성기·문성근씨, 국악인 오정해씨, 인기 비디오 자키 최할리씨 등이 그들이다. 급기야 당 안팎에서 ‘신당이 아니라 새 방송국을 차리려 하느냐’는 힐난이 쏟아졌고,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번 발기인 명단에서 그들의 이름은 모두 빠졌다.

그런데 사실 국민회의 내부에서는 신당 창당 논의 초기에 이와 전혀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개혁적 신당’이라는 표어에 걸맞게 차세대 리더십을 부각시켜 신당 창당의 분위기를 몰아간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이 분위기를 타고 개혁적 이미지를 갖춘 김근태·노무현 부총재 등이 크게 부각됐다. 그러자 포스트 DJ를 노리는 이종찬 부총재, 이인제 고문, 이수성 민주평통자문회의 부의장 등도 그 대열에서 빠질 수 없다는 듯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 지도부의 판단으로는 이들의 경쟁 양상이 초기에는 신당 창당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펼쳐졌다. 당의 특별한 주문이 없는 상태에서도 저마다 각개약진을 통해 새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을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였든 아니면 자파 세력을 늘리기 위한 흑심에서였든 경쟁력 있는 새 인물 발굴을 당에서 말릴 이유가 없었다.

잘 알려진대로 김근태 부총재는 자신이 산파역을 담당했던 국민정치연구회와 신당의 접목에 주력했고, 현재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편이다. 이종찬 부총재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5·6공 때 요직을 두루 거쳐 당시 인물들에 대해서만큼은 당내에서 이부총재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다. 더구나 DJ 정부 출범 전에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았고, 이어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해 인맥이 더욱 두터워졌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수성 민주평통자문회의 부의장은 해외교포들까지 광범하게 참여하고 있는 조직의 특성을 십분 활용, 새 인물의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이수성 부의장과의 인연으로 신당에 참여하게 된 대표적 인물이 유삼남(58)
전 해군참모총장이다. 유씨는 9월9일 발표된 신당 발기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이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한 셈이다.

새 인물 영입에 몰두하던 차세대 주자들의 경쟁이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은 9월6일 의원 연수회 다음날부터였다. 여기서 ‘DJ 2선 후퇴론’이 제기되자 바로 다음날 이인제 고문은 “경청할 만한 얘기”라고 맞장구를 쳤다. 김근태 부총재도 그의 평소 소신대로 “한 개인으로 좌우되는 시대는 가고 있다”며 ‘1인 정당 시스템’의 극복을 주장했다. 이종찬 부총재 또한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는 가운데 ‘개혁속도조절론’을 들고나왔다. 보기에 따라서는 개혁 드라이브를 건 DJ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법도 했다.

차세대 주자를 자처하는 당내 인사들의 경쟁이 점차 뜨겁게 번져가자 당내 신당 추진 세력들로부터 반발이 터져나왔다 “남들은 죽을 고생을 하는데 그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는 얘기였다. 이만섭 대행으로부터 건네받은 발기인 추천 명단을 놓고 지난 주말까지 인선에 고심하던 김대통령은 마침내 ‘부총재단은 발기인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려 이들의 과열 경쟁을 진정시켰다.

이 때문에 차세대 주자를 자처하지 않은 부총재들도 덩달아 신당 발기인 명단에서 빠지게 됐다. 지역 배려 차원에서 거론됐던 서석재 부총재나 여성 대표로 이름이 오르내린 신낙균 부총재가 대표적으로 꼽힐 만하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새 인물 영입을 위한 당의 공식 창구는 한화갑 사무총장, 정균환 특보단장, 최재승 조직위원장, 정동채 기조실장 등이다. 이들 모두는 동교동계 출신들로 김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실세들이라는 점에서 인물 영입에서 비공식 창구보다 훨씬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이 최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영입 대상은 ‘동진정책’의 완결을 위한 영남 인사들이다. 그중에서도 김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화해를 계기로 박근혜 의원에게 집중적인 구애 작전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사자의 반응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밖에 한나라당 비주류 중진인 K의원, L의원, J의원을 최대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소문이다.

한나라당은 9월9일 치러진 경기도 용인시장 선거에서 뼈 아픈 경험을 했다.
이번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학규 후보는 얼마 전까지 자민련 용인지구당 위원장이었다. 김학규 후보의 탄탄한 지역구 관리를 지켜본 용인 출신 한나라당 이웅희 의원은 필승용 카드로 그를 공천해 주도록 중앙당에 요청했다. 그러나 당 주류측은 ‘내 사람’ 챙기기에 더 집착해 김후보 대신 구범회 당 부대변인을 공천했다.

공천에서 탈락하자 김후보는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고, 둘 다 낙선하는 큰 망신을 당한 것이다. 후유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용인 출신 이웅희 의원이 김후보의 공천이 끝내 관철되지 않자 탈당해버린 것이다. 나아가 이의원은 김후보 선거본부장을 맡아 한나라당을 끝까지 궁지로 몰아갔다. ‘새 인물’을 무시했다가 용인시장직도 놓치고, 국회 의석마저 한석 줄어드는 우를 범한 것이다.

용인시장 선거는 인물 영입을 함부로 할 수 없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금은 요란한 편인 국민회의와 달리 한나라당은 현재 인물 영입을 적극적으로 거론할 분위기가 아니다. 자칫 잘못 영입했다가는 당을 분열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나라당 사람들은 ‘인물 영입 문제는 천천히 간다는 것이 당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변명처럼 설명하고 있다.

오는 16대 총선은 한나라당이 야당으로서 처음 치르는 것이다. 여당 시절 대통령이 주도하던 확고한 카리스마도 없고, 현 이회창 총재의 당 지도력 또한 강한 편이 아니다. 한 마디로 총재의 힘으로 물갈이를 할 힘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16대 총선 공천은 중진들의 몫을 그대로 보장해 기존 인물들의 기득권을 최대한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 인물이 당선 가능성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물갈이가 안된다면 영입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자신이 설 공간이 적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한나라당에 비어 있는 지구당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남지역을 빼고도 사고 지구당을 포함해 족히 50여 곳은 넘는다. 숫자로만 따지면 적지는 않지만 내용상으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알맹이 있는 지역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 만만찮은 공동 여당 후보군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거기에다 내부적으로 넘어야 할 두가지 난제가 있다. 그 하나는 옛 민주당 오너 이기택 부총재 계보의 문제다. 대선 전에 당대 당 형식으로 통합하면서 인정한 그의 지분 30%가 고스란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을 많이 영입한다 하더라도 이부총재가 자기 몫이라고 주장하면 최소한 그의 지분만큼은 그에게 전권을 넘겨줘야 한다. 또 하나는 YS와 관련된 것이다. 잘 알려진대로 YS는 민주산악회 재건을 총선 뒤로 미뤘다. 이를 두고 이회창 총재의 ‘완승’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YS 특유의 정치적 감에 의한 시기 조절이라고 보는 게 더 옳아 보인다.

민산 유보 발표가 나오기 10여일 전쯤에 YS의 최측근인 L씨가 했다는 말이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L씨는 과거에 상도동과 청와대에서 자신과 같이 일을 했던 ‘옛 동지’들을 이날 오후 7시쯤 종로의 한 음식점으로 초청했다. 여기서 그는 “강력한 유일야당 건설이 어른의 뜻이다. 애초 민산을 통해 신당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상도동 측근들에 의하면 YS의 정치적 행보의 최종 목적은 “한나라당 지배를 통한 영남정권의 재창출에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 말 속에 담긴 YS의 속뜻을 뜯어보면 한나라당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민산 재건을 추진했고, 1단계 목표로 상당한 지분의 공천권 확보를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산 재건을 유보했다 해서 공천권까지 포기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몇사람이 됐건 YS가 공천 추천을 하면 이총재 입장에서는 마냥 거부할 입장만은 아니다. YS 스스로 내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제2창당’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페이퍼상으로 가능한 일 외에 가장 중요한 인물 영입 작업은 사실상 추진을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인물 영입을 서두를 일이 없다’‘미리 명단이 공개되면 여당에 더 좋은 조건으로 영입당할 우려가 있다’는 등 이러한 상황을 시인하는 말이 나돌고 있다. 영입 작업을 하더라도 그 범위는 매우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 한나당의 형편이다.

인물 영입에 관한 한 자민련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우선 선거구제 문제를 둘러싸고 출신 지역별로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너무 달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충청권 출신들은 현행 소 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르는 게 금배지를 다시 다는 데 가장 유리하다. 반면 나머지 지역 출신 의원들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했을 때 하나같이 불안한 형편이다. 따라서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는 합당을 하는 것이 최선이고 최소한 중선거구라도 받아들여야 할 입장이다.

대구 출신인 박철언 의원은 9월1일 ‘팍스 코리아나 21’(회장 조병륜)
이 주최한 조찬 강연회에서 “정치 대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연말·연초에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나는 이를 확신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박의원의 ‘정치 대통합’은 바로 국민회의와 합당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 분명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주장이 박의원 개인이 아니라 비충청권 출신 의원들의 속마음을 그대로 대변한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JP가 합당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해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그렇다고 JP가 충청권에 대해 DJ가 호남에서, YS가 부산·경남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독점적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 이후 충청권, 특히 충북 쪽에서 지지 기반이 많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자체파악하고 있다.

이처럼 집안 정리가 안돼 있는 데다 외부인에게 내어줄 공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영입자들이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 오히려 잘못 발을 담갔다가는 얻는 것 없이 몸만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자민련은 인물 영입 작업을 사무총장에게 일임해 놓은 채 사실상 뒷짐을 쥐고 있는 형편이다. 아주 가끔 자민련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일방적인 짝사랑인 경우가 많다.

정치권에서는 자민련이 살 길을 찾기 위해 합당을 결행하든지 아니면 공동 정권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길을 가든지 최후의 선택 시기를 대체로 연말로 보고 있다.

윤석진 월간중앙 기자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 287호 199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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