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주유소 찾다 기름 떨어지겠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지난주 서울 삼성동 GS칼텍스 삼성로 셀프주유소. 차를 주유기 앞에 세우고 ‘시작’ 버튼을 누르자 ‘주유 전 엔진을 정지해 주시고 결제 방법을 선택해 주세요’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내에 따라 기기를 조작하고 5만원어치 주유를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 ‘기름 넣다가 넘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4만9000원께부터 기름 들어가는 속도가 확 줄고 5만원이 되자 자동으로 멈췄다. 몸에서 기름 냄새가 묻어나는 느낌도 아니었다. 생수도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었다.

 이 주유소의 김영기 점장은 “인근 일반 주유소에 비해 L당 130원 정도 싸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일반 주유소보다 싼 셀프주유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7일 한국석유공사와 업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셀프주유소 34곳의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792.8원. 서울 전체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가격보다 L당 72.5원 싸다. 셀프주유소의 경유 가격도 L당 1595.5원으로, 서울 주유소 평균가격보다 78.2원 낮다.

 올 2월 일반주유소에서 셀프주유소로 바꾼 서울 사당동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는 최근 고객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섯 차례 이상 찾은 단골이 42%에 달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셀프주유소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소비자 시민모임인 석유시장감시단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전국의 셀프주유소는 326개로 전체 주유소(1만3255개)의 2.5%에 불과하다. 미국·영국·독일의 셀프주유소는 전체의 90% 이상에 달한다. 일본도 10%대다. 석유시장감시단 김창섭 부단장(경원대 교수)은 “기름값을 낮추고,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셀프주유소가 더 늘어나야 한다”며 “셀프주유소는 불편하다는 소비자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셀프주유소를 한 번 이용해 봤다는 회사원 황제영(32)씨는 “주유소를 찾기도 힘들지만 있어도 차에서 내리기 번거롭고 기름값이 특별히 많이 싸다는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셀프주유소를 이용할 의사가 없는 운전자는 그 이유로 ‘차에서 내리고 타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아서’(35.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서 ‘주유기 사용을 잘 하지 못할 것 같아서’(17.8%) ‘사고가 날 것 같아서’(13.4%) ‘기름 넣는 것이 길어질 것 같아서’(7.1%) 등을 꼽았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셀프주유소를 많이 늘리지 못하는 또다른 고민은 셀프 주유 기기가 비싸다는 점이다. 셀프주유소 주유기기 가격은 일반 주유기(600만원 내외)보다 훨씬 비싼 대당 2000만원 선이다. 카드인식기·현금인식기·영수증 발급기 등이 추가로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주유소협회 정상필 기획팀장은 “셀프주유기 4~5대만 달아도 1억원이 들어간다”며 “투자 대비 수익을 고려할 때 셀프주유소로 바꾸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셀프주유소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GS칼텍스 이병무 상무는 “고객에게 편리하고 경제적인 셀프주유소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를 위해 셀프주유소 확대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셀프 주유 기기에 대해서는 저리 융자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