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뮤지컬‘영웅’과 애국의 품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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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

안중근 의사를 다룬 뮤지컬 ‘영웅’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내년 1월 15일까지) 중이다. 구성은 1년 전과 똑같다. 지난해 안 의사 하얼빈 의거 100돌을 맞아 초연된 이 작품은 올해 주요 시상식을 휩쓸었다. 더 뮤지컬 어워즈와 한국 뮤지컬 대상에서 나란히 6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창작 뮤지컬 40여 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란 평가마저 나왔다.

 그런데 재미난 현상이 있다. 작품은 1년 전 그대로였지만 이를 수용하는 관객은 달라 보였다. 객석은 지난해보다 한층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 북한 도발에 의한 사회적 위기감 때문인 듯싶었다. 특히 하얼빈 의거 직전,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결의를 읊조릴 땐 객석마저 차가운 침묵이 감돌았다. 독립의병들이 ‘아리랑’을 익살스럽게 부르는 장면에서도 큰 웃음이 터지지 않았다. 역사 속 영웅을 향해 그저 넋 놓고 박수만 보낼 수 없는 게 2010년 한국 극장의 풍경이었다. ‘위중한’ 감정이입이라고 해야 할까.

 올해에도 뮤지컬 ‘영웅’에 대한 몇몇 평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언제까지 애국주의를 우려 먹을 텐가”라고 지적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애국주의는 일종의 트라우마(심리적 외상)였다. 1970,80년대 독재 시대를 거쳐오면서 위정자들은 ‘애국’을 교묘하게 ‘반공’으로 환치시키곤 했다. 예술 작품에서 ‘애국’을 표방하는 건 곧 ‘꼴통 보수’의 전형처럼 인식돼 왔다.

 안중근 의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에 뮤지컬 ‘영웅’엔 애국주의가 저변에 깔려 있긴 하다. 하지만 이젠 애국주의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북한의 수용소를 고발한다는 목적이 너무 강해,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는 우를 범한 뮤지컬 ‘요덕 스토리’ 같은 작품이 있는 반면, 박진감 있는 볼거리와 가슴을 치는 음악으로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도 있다. ‘영웅’은 그 후자에 속한다.

 역사 속 위인을 다룬다고 무조건 “트렌드에 한참 뒤지는, 구질구질한 작품 아냐”라고 예단하는 것은 선입견이다. 반대로 남북 대립이 심해질수록, 어설프게 애국심을 고취하는 삼류 작품이 판을 칠지도 모른다. 애국주의에도 격을 따질 때다. ‘주의’에 앞서 작품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 뮤지컬 ‘영웅’이 더 소중한 이유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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