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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환구시보는 중국의 품격 떨어뜨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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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환구시보(環球時報)는 8월 초 한국과 관련된 선정적인 설문 조사를 보도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중국 네티즌들을 상대로 ‘한국을 힘으로 누를 것인가, 말로 설득해 중국 편으로 끌어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자극적 조사였다. 응답자의 94.5%가 “(한국을) 힘으로 누르자”고 답했다는 게 요지였다. 당시 상황은 천안함 피침 사건 이후 한국이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한·미 연합 해상 군사 훈련을 전개한 시점이었다.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다. 그런 신문이 미군의 서해훈련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중국인들의 불만을 대리만족 시켜주기 위해 네티즌들을 동원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4개월이 흐른 지금, 환구시보는 또다시 납득하기 어려운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에 따른 대응 차원의 정당한 한국 측 군사훈련을 며칠째 맹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23일자 환구시보 사설에서 동원한 표현들은 상식에 어긋날 정도로 거칠고 무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컨대 “중국이 좋은 말로 한국을 타일러도 한국이 제멋대로 행동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면 중국은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중국은 한국을 손봐줄 지렛대(수단)가 많아 그중에 하나만 사용해도 짧은 시간 안에 한국 사회를 뒤흔들 수 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가 군사 훈련을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라고 중국 정부에 주문하는 것으로 읽힌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동원된 표현이나 어투가 경악스러울 정도다.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따지지 않고 도발자인 북한을 사사건건 편들더니 급기야 비이성적인 북한 언론을 닮아버린 듯해 씁쓸하다.

 환구시보의 보도 태도는 선린외교를 강조해온 중국 정부의 외교 방침에도 어긋난다. 평화발전을 역설한 외교담당 국무위원 다이빙궈(戴秉國)가 최근 인민일보에 쓴 기고문을 차분히 다시 읽어 보라.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한국과 중국 정부 사이를 이간질하고 싸움을 부추기는 행태는 곤란하다. 중국의 국격(國格)을 생각하는 보도 태도가 아쉽다. 환구시보가 상업성에 매몰돼 선정적인 보도에 머물지 말고 정론을 펴길 바란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