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과 환경의 만남 … 경주 ‘청정 에너지’ 도전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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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바닷가.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 앞바다가 지척이다. 이곳 지하 80~130m를 뚫고 내려간 암반 속에서는 돔 건축물 공사가 한창이다. ‘경주 방폐장’으로 불리는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의 핵심시설로 국내 원전에서 나온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게 된다.

 원전을 운영하는 나라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시설이 이제야 가동됐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24일 울진 원전의 임시저장고에 보관하던 저준위 폐기물 200L짜리 1000드럼을 이곳으로 옮겼다. 일단은 지상 건물인 인수저장시설에 보관되며, 지하동굴 저장소가 완공되는 2012년 말 지하로 옮겨져 영구 밀폐된다.

 이날 경주시의회 의원 21명과 환경운동가 등 50여 명이 인수저장시설을 버스로 막아서며 2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완공 전에 폐기물을 옮기자 안전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경주시의회 국책사업 및 원전특별위원회 이종근 위원장은 “안전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다른 지역의 방폐물을 미리 반입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잠시 긴장감이 돌았으나 시위가 더 격렬해지진 않았다. 안전하다는 설명, 그리고 핵폐기물과 환경(안전성)이 만나 도시 경쟁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설득이 이어졌다. 민계홍 방폐물관리공단 이사장은 “폐기물의 안전도를 전수 검사하기 위해 1개월 이상 보관할 장비를 갖춰 안전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경주 방폐장 건설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부지가 경주로 결정되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1986년 첫 후보지로 거론된 경북 영덕부터 울진과 안면도·고성·굴업도·부안까지 아홉 차례나 후보지가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치른 사회적 혼란과 비용도 막대했다.

 경주는 주민들의 선호를 묻는 투표를 도입, 열띤 경쟁 끝에 선정됐다. 경주시는 2005년 시민투표 결과 98.5%의 찬성률로 방폐장을 유치했다. 물론 그 뒤로도 쉽진 않았다. 2008년 공사가 시작된 뒤 동굴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져 공기가 지연됐다. 주민들은 직접 ‘방폐장 현안 사항 해결을 위한 지역공동협의회’를 구성해 안전성 검증에 나섰다. 이들이 올 3월에서야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공기가 지연된 탓에 동굴저장소가 완공되지 않은 지금 지상 인수저장시설에 임시보관을 시작한 것이다.

 경주 방폐장 이후엔 더 큰 과제가 있다.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고준위 폐기물 저장소를 짓는 일이다. 현재 사용한 핵연료는 각 원전의 창고에 보관 중이다. 하지만 2016년부터는 차례로 한계에 도달한다. 보관할 장소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론화 작업도 시작하지 못했다. 지식경제부 김정관 에너지자원정책실장은 “진행 중인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론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사능이 많은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장소인 만큼 저준위 방폐장보다 큰 논란이 불가피하다.

 방폐물관리공단은 방폐장을 친환경 명소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일대 약 210만㎡ 부지에 자유관람공간을 조성해 방문객센터·환경학습장·녹차밭·오행원·망향정 등을 짓고 있다.

 한편 경주시는 방폐장을 유치하는 대가로 정부로부터 받는 특별지원금 3000억원으로 도시 기반시설을 확충키로 했다. 이미 형산강 강변도로 등 도로를 곳곳에 개설했다. 장학기금 100억원도 조성했다. 여기다 방폐물 반입으로 드럼당 63만7500원의 반입 수수료를 받는다. 이 돈으로 각 가정에 TV 수신료와 전기요금(월 2500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경주=송의호 기자,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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