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에도 멈추지 않는 원전건설 열기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서 지난 9월30일 발생한 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는 도카이무라(東海村)
라는 조그만 마을을 유령의 도시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사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원전 건설 열기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최근 몇년간 깨끗하고 에너지량이 풍부한 원전 건설 프로그램에 매달려 온 아시아 각국의 원전 건설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도카이무라현의 이번 사고는 아시아에서 원전에 대한 안전대책이 얼마나 소홀히 여겨지고 있는지 밝혀지는 계기가 됐다. 우라늄 공정 과정에서 일하던 도카이 사업소의 JCO직원들에게 안전 장치라고는 뒤집어 쓴 오래된 금속 양동이가 전부였다.

방사능물질에 대한 폐기절차도 준수되지 않았다. 고농축 방사능 물질의 폐기는 정확한 양을 계산해 폐기통에 넣어 밀봉한 뒤 안전상태를 유지하기까지 24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방사능 물질에 대한 양을 계산하지 않고, 커다란 통에다 쏟아붓는대로 옮겨버렸다.

사고 발생 후 도카이무라현 당국은 사고현장으로부터 반경 10km 이내 30만 여명의 주민들에게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안에 머물라고 경고했다. 과학공상 영화에서나 일어남직한 장면들이 연출됐다. 고속도로의 톨게이트가 패쇄되고 열차가 운행 중단됐으며, 보호의를 입은 경찰은 시내의 교통을 통제했다.

우연히도 4일 뒤 한국에서도 냉각수가 누출되는 원전 사고가 발생, 22명이 방사능에 피폭됐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사고 발생 24시간이 지나도록 발표조차 하지 않아 사고 은폐 의혹마저 사고 있다.

두 사고는 아시아 지역의 정부들이 원자력의 효율성과 안전성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남겼다. 에너지가 부족한 아시아 각국은 미국과 유럽이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가는 것과는 정반대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오히려 늘려왔다.

지난해 세계에서 건설된 4개의 원전 중 3개가 아시아에 건설됐다. 지난 98년에는 중국에 2기, 일본에서도 1기가 건설됐다. 이미 15기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은 2015년까지 그 수를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인도는 지난 93년 임계치 3에 달하는 원자로 화재사고 이후에도 원전 확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더구나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는 원전 건설이 핵무기 개발과 밀접히 연관돼 있어 원전의 위치마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원전에 대한 종합적인 공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에 대한 대비가 소홀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만에서 원전 건설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대만국립대 장 궈롱 교수는 “원자력 발전소는 어디에 위치하든 그 자체로 위험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시아 각국 정부는 운행중단 등 안전에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해도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9월21일 발생한 지진의 피해복구가 한창인 대만에서도 일본의 원전사고를 계기로 자국의 원전은 안전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타이베이 인근에 새로 건설하고 있는 원전에 대한 반대운동조차 이번 사고로 별로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번 사고로 국민들이 원전의 안전에 대해 우려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새로운 원전 건설을 막을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은 모아지지 않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번 사고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 일본이다. 일 과학기술연구소는 원전사업에 대한 추진과 규제를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정부의 사고에 대한 대응도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오전중에 발생한 사고가 오후 9시가 돼서야 공개된 데 대해 은폐·축소 의혹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국민들로부터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사고 후 마이니치(每日)
신문의 조사결과 국민의 74%가 원전건설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반대의견자의 절반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생각을 바꿨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통상성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 위해 앞으로 약 20기 정도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자원이 한정돼 있는 일본으로서는 다른 대체에너지를 찾지 못하는 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다.

[장정훈 중앙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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