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봄날 갔나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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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건축 규제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주택시장 불안의 진원지인 재건축을 잡아야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달 19일 시행될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는 당초 예상보다 더욱 강화됐다.

정부는 또 부실한 안전진단에 대해선 직권조사권을 발동하고 일반 분양가를 높게 책정한 건설사에 대해 세무조사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정부가 또 한 차례의 ‘재건축과 전쟁’에 나선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재건축 단지들은 사업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조금이라도 개발이익환수제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개발이익환수제 더욱 강화

=건교부는 50가구 미만 소규모 단지를 제외한 모든 재건축아파트 단지에서 임대아파트를 의무적으로 짓도록 하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국무회의를 거쳐 시행령이 발효되는 5월 19일 이후 재건축 단지는 용적률이 1%만 늘어나도 임대아파트를 반드시 지어야 한다.

건교부 관계자는 “증가면적이 30평 미만인 단지에 대해 환수제를 적용하는 않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어 별도의 예외규정을 두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건축 기대심리를 부추길 수 있는 최소한의 실마리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5월18일까지 사업승인(사업시행 인가)을 받는 재건축 단지는 용적률 증가분의 10%를, 5월19일 이후 사업승인을 받는 단지는 증가분의 25%를 임대아파트로 지어야 한다.

다만 5월 18일까지 분양승인을 신청한 단지는 임대아파트를 짓지 않고 재건축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 50가구 미만 단지는 전체의 8%선인 1200곳(8만3000가구)에 불과해 재건축 초기단계 단지들이 대부분 환수제 대상에 오르게 됐다.

레피드코리아 권대중 사장은 “용적률 1% 늘어나도 환수제 대상이 될 경우 용적률 200%안팎의 강남권 중층단지들도 적지 않은 임대아파트를 지어야 해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환수제 부담 줄이자”비상

=서울 13개 고밀도 아파트 지구 중 사업진척이 가장 빠른 서초구에선 최근 서초동 세종ㆍ삼호 2차, 잠원동 한신 5ㆍ6차 등이 사업승인을 신청했다.

2월말 이후 서울시의 건축심의를 통과하자 서둘러 사업승인을 신청한 것이다. 한신 6차 조합 관계자는 “5월 18일 이전에 사업승인을 받아 둬야 임대주택 건립에 따른 수익성 하락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건축심의를 통과한 반포 저밀도지구 내 한신 1차는 환수제 시행 이전에 사업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조합측은 “건축심의 통과 전인 3월 17일 사업승인을 신청해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잠실 저밀도지구 내 시영단지는 환수제 대상에서 무난히 벗어날 것으로 조합측은 내다본다. 시영은 지난달 5일 관리처분계획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5월 초 분양승인을 신청할 방침이다.

조합 관계자는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돼 환수제 시행 전 분양승인 신청에는 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주공 2단지도 다음달 초 서울 4차 동시분양에 참여해 환수제를 피하게 됐다.

그러나 주공 1단지는 현재로선 환수제를 피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7일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구청에 신청해 놓았으나 분양승인 신청까지 일정이 빠듯하다.

분양승인을 신청하기 위해선 관리처분계획 인가, 철거, 착공계 제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조합 관계자는 “환수제 시행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분양승인 신청을 최대한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고덕지구도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 지구에서 사업속도가 가장 빠른 고덕 주공1단지가 사업승인 전단계인 정비구역 지정을 받으려다 지난 6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보류 판정을 받았다.

이는 고덕지구 개발방향을 담은 지구단위계획이 아직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개발이익환수제는 피할 수 없겠지만 입지가 뛰어나 재건축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값 오름세도 꺾일 듯

=정부가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의 수위를 높임에 따라 강남권 재건축 시장도 영향권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서초구 잠원동 대한공인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의 계속된‘엄포’에도 값이 많이 올랐지만 막상 초강도의 환수제가 시행될 경우 재건축 시장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양지공인 이덕원 사장도 “초고층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으로 덩달아 오른 재건축 초기단계의 단지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구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이달 하순 들어 재건축 매수 문의가 많이 줄어들었다. 잠실동 송파공인 최명섭 사장은 “집주인들의 개발 기대심리가 높아 호가는 떨어지지 않지만 매수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업자는 “재건축 매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데 매수자들이 없어 곧 호가를 낮추는 집주인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시장을 주도하던 재건축이 조정을 받을 경우 일반 아파트도 약보합세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중개업자들은 전했다.

하지만 강남권에선 가격이 떨어지면 매수하겠다는 대기 수요층이 많아 가격 하락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투자 체크 포인트

=서울지역에서 재건축은 추진 절차를 따져본 뒤 개발이익환수제 영향을 덜 받는 단지 위주로 선별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환수제를 적용받을 재건축 단지의 경우 어느 정도 추가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무리한 투자는 금물이다.

다만 환수제 대상에서 벗어나더라도 정부가 일반 분양가 책정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므로 조합원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반 분양가를 높게 매겨 조합원 부담을 낮췄지만 앞으로는 쉽지 않게 된 때문이다. 또 정부가 나서 안전진단 직권조사를 할 경우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나 강남구 대치동 은마 등은 안전진단 통과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정부의 주택 안정 대책이 주로 재건축을 겨냥하고 있는 만큼 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재건축 추가 대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건설교통부 서종대 주택국장은 “2003년 10ㆍ29대책보다 강력한 대책을 마련할지 여부는 시장 상황에 달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보다는 규제가 덜한 경기도 안산,화성,용인,평택 등의 재건축 단지를 눈여겨 볼 것을 조언한다. 이들 지역은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이 아니어서 개발이익환수제, 소형평형의무비율, 후분양제 등 각종 재건축 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부분 안전진단 통과나 조합설립 인가 단계로 갈 길이 멀다는 점을 감안하고 투자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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