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최고 골퍼 네 명도 당했다 … 몹쓸 ‘입스’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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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프로골퍼들 사이에 ‘입스’가 화제다. 내로라하는 골퍼들이 이 몹쓸 병으로 최근 한번씩 고생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입스에서 벗어나 맹활약하는 김경태와 김대섭, 김혜윤, 이정민(왼쪽부터). [중앙포토]


프로골퍼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입스(Yips)’가 요즘 화제다. 19일 끝난 KLPGA투어 차이나 레이디스 오픈 1,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던 이정민(18·삼화저축은행)은 드라이브 입스로 올 하반기 6개월가량 갖은 고생을 했다고 털어놨다. 5월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우승 이후 성적에 대한 중압감으로 입스가 찾아왔다고 한다. 이로 인해 드라이브샷이 악성 훅과 슬라이스를 오가며 춤을 췄고, 한동안 드라이버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김혜윤(21·비씨카드)도 대전체고 시절 혹독한 입스를 경험했다. 비거리를 늘리려다 드라이브 입스가 생겼고, 그 여파가 지금 ‘스텝스윙’(다운스윙 때 왼쪽 다리를 타깃 쪽으로 이동하면서 스윙) 형태로 남아 있다. 올 시즌 일본남자투어 상금왕을 차지한 김경태(24·신한금융) 역시 일본 진출 후 거리를 늘리려다 드라이브 입스에 걸려 2008년 말까지 1년 이상 암흑기를 보냈다.

◆입스가 뭐지=입스란 샷 결과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상적인 스윙을 못하는 것을 말한다. 입스에 걸리면 근육이 경직돼 제대로 된 샷을 하기 어렵다. 심한 경우 손이 떨리고 어깨가 굳어 클럽을 떨어뜨리기까지 한다. 입스는 완벽한 스윙을 추구하려다 걸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면서 심리적인 충격으로 입스가 찾아오기도 한다. 아마추어 골퍼들도 예외는 아니다. 주니어 유망주였다가 드라이버 입스로 조기 은퇴한 송경서(34) KPGA프로는 “연습을 많이 하고, 볼을 잘 치는 골퍼들에게 걸릴 확률이 높다. 완벽하게 치려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결국 스윙 리듬을 잃으면서 입스에 걸리게 된다”고 말했다.

 2006년 극심한 드라이버 입스로 은퇴 직전까지 몰렸던 김대섭(29·삼화저축은행)은 “드라이브샷만 하려면 티에 꽂은 볼이 2개로 보일 때도 있었다. 드라이버가 쇳덩이처럼 무거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렵게 백스윙을 하면 앞이 깜깜해지면서 어떻게 다운스윙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입스 종류도 다양해=입스는 드라이버, 퍼팅, 어프로치 등 모든 샷에 찾아온다. 2002년 KLPGA투어에서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홀에서 짧은 1m 파퍼팅을 놓치며 준우승했던 한지연(36·은퇴)은 이후 6년간 퍼팅 입스에 시달렸다. 한지연은 “짧은 퍼팅만 남으면 백스윙이 되지 않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몸이 굳어져 짧은 퍼팅도 놓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이를 고치기 위해 수 차례 심리치료도 받았다. 어프로치 입스도 있다. 어프로치 샷만 하면 몸이 경직되면서 뒤땅을 치거나 투 터치를 하게 된다. 핸드 퍼스트 자세에서 그립을 짧게 쥐고 급하게 클럽을 들어올리다가 자신의 바지를 찢은 골퍼도 있다.

 ◆시간이 해결해줘=심리적 압박에서 비롯된 만큼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심리학자 조수경(41) 박사는 “입스는 불치병이 아니다. 걸림돌이 아닌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디딤돌로 느긋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급하게 생각할수록 악화되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자신감을 먼저 찾는 게 중요하다”고 처방했다.

 김대섭은 “4개월 동안 클럽을 잡지 않다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티를 꽂지 않고 드라이브샷을 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 볼이 똑바로 날아갔다. 스탠스를 넓게 취한 뒤 하체 움직임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티샷을 하니까 볼이 맞기 시작했다. 아마 거리를 내기 위해 하체를 많이 움직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윙 리듬과 템포를 잃었던 같다”고 설명했다.  

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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