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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장, 3% 물가상승’의 형용모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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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

‘소리 없는 아우성’ ‘작은 거인’ ‘창조적 파괴’….

 이런 표현, 어찌 보면 말이 안 된다. 소리가 없는데 아우성칠 수 있나? 거인이 작다고? 파괴를 하면서 창조라니?

 이건 어떤 상황을 강조하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쓰는 비유법인 형용모순(oxymoron)이다. 단어 따로따로는 정반대의 의미인데 엮어 놓으니 뜻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모순의 미학이라고 할까.

 이런 형용모순, 이 정부도 즐긴다.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5% 성장, 3% 물가 상승’을 전망했다. 올해 성장률 예상치가 6.1%다. 지난해에 0.2% 성장에 그친 기저효과 탓이 크지만 그래도 높은 성장률이다. 내년은 여기에서 5% 더 성장한다는 게 재정부의 전망이다.

 민간 경제전문기관과 한국은행의 생각은 다르다. 잘해야 4.5% 성장이다. 3.8% 성장(삼성경제연구소)에 그친다는 분석도 있다. 내년에는 나랏돈을 풀어 경기를 끌어올리기 힘든 데다, 한국호의 성장 엔진인 수출의 동력도 올해보다 떨어질 게 확실시되는데도 정부는 낙관적이다. 더 이상한 건 지금부터다. 그렇게 성장을 하면 물가는 뛰는 게 정상이다. 성장을 해서 개인이나 기업의 소득이 늘면 소비와 투자도 늘어난다. 수요가 확대되니 물가가 오르는 건 당연하다. 민간 기관이나 한국은행이 예상하는 내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다. 국제 원자재 값 상승에다 중국발 수입물가 상승(차이나플레이션)이라는 복병도 만만찮아 내년에 큰 폭의 물가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성장은 ‘훌쩍’ 하면서 물가는 ‘덜’ 뛴다고 고집한다. 같은 형용모순 표현인데도 강렬하게 뜻이 전달되지 않고 흰소리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건 다 학습효과 때문이다. 지금 이 정부의 ‘747 공약’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연간 7%씩 성장해 10년 후 1인당 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7대국에 들어가겠다는 747 점보기는 활주로를 달려보지도 못하고 격납고에 폐기처분된 지 오래다.

 이쯤 되니 떠오르는 게 있다. 2012년 선거다. 4월에 총선이, 12월에 대선이 치러진다. 선거를 앞두고 경제는 뜨거워지거나 최소한 따뜻해야 여당이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니 성장은 더 높게, 물가는 더 낮게 잡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이를 장밋빛 전망이라고 비난만 할 필요는 없다. 정부의 발표는 ‘전망’보다는 의지가 담긴 ‘목표’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정부가 의지를 보였다면 일단 격려의 박수를 보낼 일이다.

 문제는 혹시 생길지도 모를 부작용이다. 방바닥에 온기가 퍼지지 않는다고 아궁이에 땔감을 넣는 것은 좋은데 과했다가는 구들장이 갈라지고, 장판이 타버릴 수 있다. 혹여 정치적 목적으로 거품을 조장했다가는 다음 선거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에 의해 ‘창조적 파괴’를 당할지도 모른다. 경제 운영은 길게 보고 한 길을 가는 게 정답이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