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맥짚기] 은행 부동산거래신탁 첫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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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은행은 부동산 중개업자를 거치지 않고 당사자끼리 부동산을 사고 파는 사람들을 위한 은행신탁상품을 내놓았다.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등을 통해 당사자간 직거래할 경우 계약금.중도금 등을 건네줄 때 머뭇거리는 일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했다는 이 상품은 부동산 매매계약을 한뒤 내는 계약금.중도금 등을 은행에 예치토록 하고 파는 사람이 잔금까지 다 내면 은행이 소유권 등기를 해주면서 예치된 돈을 판 사람에게 지급해 주는 것으로 특히 예치기간 동안 채권 등에 투자해 돈도 불려주는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판사람이 계약금 및 중도금을 받아 다른 부동산을 사는 우리 관행과 다소 거리가 있어 성공여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직거래가 성행하면 의외로 호응도가 클 것이란 게 금융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빛은행이 성공하면 다른 금융기관에서도 이런 유사 상품을 만들어 수요자를 끌어들일 게 분명하다.

문제는 이 상품으로 인해 중개업계에 큰 파장이 일게 된다는 점이다. 중개물건이 이런 공신력있는 은행 손으로 들어가면 영세한 중개업자가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은행 더러 이런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요건만 갖추면 다 사업을 벌일 수 있고 특히 한빛은행의 이 상품은 중개업무와 무관하기 때문에 항의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더욱이 이 상품은 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수수료도 일반 중개업자가 받는 법정 수수료의 약 절반 밖에 안돼 수요자들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중개업소들은 이런 공신력 있는 기관과 경쟁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안일한 중개방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하는 길밖에 없다.

단순 중개에다 서비스도 변변치 못한 기존 방식으로는 인건비는 고사하고 가게세도 제대로 못벌게 된다.

중개는 물론 컨설팅.재테크 상품 개발.재산관리.금융 서비스 등 종합부동산 회사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이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에 휩쓸려 도태될 게 뻔하다.

앞으로 지천으로 깔려있는 동네 중개업소는 거의 문을 닫게 되고 지역 또는 전국의 매물정보를 갖고 있는 체인점이나 대형 종합부동산 회사만 살아남는다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다.

앉아서 장사하는 시대가 아니라 고객을 찾아 다니며 자신을 알리는 선진국형 중개형태가 요구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멀지 않아 수요자들이 일일이 중개업소를 찾아 다니지 않고도 마음에 드는 부동산을 고를 수 있는 중개 서비스를 받는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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