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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꾸는 ‘힘’ 시민사회단체 탐방 시리즈 ③ 천안 모이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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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혼자서는 지역사회에 살면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힘이 너무나 부족하다. 시민들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여러 분야에서 시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바로 시민사회단체다. 중앙일보 천안아산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노동·인권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집단의 이익이 아닌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찾아 조명한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천안 일봉초등학교에서 ‘찾아가는 다문화교실’ 수업에 참여한 3학년 1반 학생들이 이론수업에 이어 열린 문화체험활동에서 뷰티주엔씨와 함께 베트남의 고무줄 놀이를 체험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학생을 위한 ‘찾아가는 다문화교실’

14일 천안 일봉초등학교 3학년 1반 교실. 2교시 수업을 알리는 음악소리와 함께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은 한 여성이 학생들 앞에 섰다. ‘찾아가는 다문화교실’을 하기 위해서다. 뷰티주엔(25·베트남·한국명 서지은)씨가 등장하자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신자우~”. 서씨의 말에 영문을 몰랐던 학생들이 곧 눈치를 채고 “안녕하세요”라며 화답했다. 칠판에는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와 전통의상 ‘아오자이’가 걸렸다. 베트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자 ‘논라’도 선보였다. 평소 접하지 못한 물건을 보는 호기심 어린 학생들의 눈에서 빛이 났다. 아시아 지도를 펼쳐 보인 서씨가 베트남의 위치와 기후특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동서는 좁지만 남북은 길어요.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면 수도 하노이에는 3시간 35분 남쪽 호치민은 4시간 50분이 걸려요. 한 나라에서도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난답니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있지만 대신 겨울이 춥지 않아요. 이곳 초가을 정도의 날씨에요. 눈도 내리지 않지요. 하지만 여름은 39도, 40도까지 올라 무척 덥답니다.”

 “방학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서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1주일에서부터 15일, 30일, 1개월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베트남 학교의 방학은 3개월이나 되요. 5월 말부터 9월 초까지입니다. 너무 좋겠죠?” 서씨의 웃음 섞인 답변에 부러움 가득 담긴 감탄사가 쏟아졌다.

 학생들은 ‘초등학교는 5년, 중학교는 4년, 고등학교는 3년인데 구분되지 않고 12학년까지 공부한다. 교복으로 흰색 전통의상을 입는다. 결혼날에는 행운을 의미하는 빨간색을 입는다. 밥 보다 쌀로 만든 국수를 자주 먹는다. 아침을 밖에서 사 먹는다. 그래서 식당도 일찍 연다.’ 등을 노트에 받아 적으며 베트남 문화에 대해 알아갔다. 같은 시각 3학년 3반에서는 몽골 문화에 대한 수업이 진행됐다. 학생들 앞에 선 벌러르마(36·몽골·아래 오른쪽 사진)씨가 몽골 전통의상 ‘데일’을 입고 몽골의 기후와 풍습, 특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하늘이 아름답고 숲과 호수가 많다. 호수를 바다라고 부른다. 사계절이 있지만 특히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영하 30도까지 떨어진다.’는 내용을 비롯해 몽고반점, 몽고의 영웅, 3살 때부터 말을 타는 문화에 대해 사례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설명하는 그녀에게 푹 빠져 있었다.

 학생들은 특히 문화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에피소드에 놀라움과 함께 큰 관심을 보였다. 뷰티주엔씨는 “처음 한국에 들어와 시어머니께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더니 안색이 좋지 않으셨다. 베트남에서의 정중한 인사는 팔짱을 끼고 하는 것이었는데 당시는 영문을 몰라 난감했다.”고 했다.

벌러르마씨가 몽골 전통의상을 그린 책자를 들고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문화체험행사 ‘모이시안의 날’ 활동 모습.

이주노동자·여성을 위한 활동

천안 모이세가 다문화인식 개선을 위해 마련한 ‘찾아가는 다문화교실’이 일봉초를 끝으로 올해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벌러르마씨와 뷰티주엔씨를 비롯해 니고라(32·우즈베키스탄), 그레이스(32·필리핀·한국명 정은혜), 멜라니(24·필리핀) 등 4개 나라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 강사로 나서 학생들에게 각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모이세에는 6개 나라 9명의 다문화 강사가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4개), 지역아동센터(5개), 유치원(2개)에서 140회에 걸쳐 4090명의 아동과 학생들에게 다문화를 알렸다. 학생들은 다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다문화가정과 아동, 이주민들이 함께 공존하며 상생하는 법을 배웠다.

 모이세는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민의 인권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한글과 생활 및 법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다문화교육, 통·번역, 체험여행, 다문화카페 등은 한국사회에 다문화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모이세는 이주민들의 고민을 나누는 상담소로 유명하다. 10월 초 파키스탄 남성과 필리핀 여성이 모이세에 상담을 요청해 왔다. 필리핀 여성 남편이 3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나 어렵게 공장생활을 하며 아들을 키우던 중 파키스탄 남성과 만났고 사랑을 키워 지난 5월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이 미등록체류자여서 출입국 단속을 당할까 늘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과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여러 곳을 다니며 알아봤지만 서툰 말과 혼인경위서, 자녀양육계획서, 재산관계증명 등의 서류들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이혼까지 생각했다. 이를 전해들은 모이세는 비자발급에서부터 결혼에 필요한 행정절차 안내, 노동상담, 서류작성 등을 도와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했다.

 9월 문을 연 ‘꿈·이·평화 북카페’에서는 가톨릭 성물 만들기, 이주여성들이 만든 소품 및 다문화 상품 제작, 맛있는 베트남 커피·차·다과 판매, 다문화 물품체험, 문화·종교·여행 서적 판매, 문화마당(월 1회 마지막 토요일)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아민(26·방글라데시) 회원
“문화와 고민을 나누는 고향 같은 곳”

부인과 3살 난 딸이 있는 아민(사진)씨는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6년을 지냈다. 침대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딸이 제일 많이 생각난다고 했다.

-천안 모이세를 어떻게 알게 됐나.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발생한 결혼관련 절차, 비자 문제 등으로 고민이 컸는데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모이세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모이세와 함께하는 활동이 있나.

 방글라데시 친구들이 없었는데 모이세와 관계를 하면서 고향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매일 저녁 9시까지 일하면 몸도 마음도 지치는데 쉬는 날에 모이세에서 친구들과 만나 ‘짜이(방글라데시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날려보낸다. 이곳에서 한글도 배우고, 노동법률교육도 받는다.

-외국인으로서 힘들고 어려운 점은.

 한국어나 한국문화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국말을 못해 힘들다기보다는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힘들다. 문화에 대해 적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국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한다. 계속 ‘빨리 빨리’를 외친다. 외국인들이 자주이용하는 공공기관들 조차 외국인들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고 벽이 높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공부시키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시민들이 다른나라 문화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경순 소장
‘For’가 아니라 ‘With’의 마음이 평화로운 사회로 가는 길

-모이세란 무슨 뜻인가.

 자신의 민족을 해방으로 이끌었던 구약성서의 모세 성인을 라틴어로 ‘모이세’라고 한다. 모세와 그 백성들은 곧 우리주변에 있는 수십만의 이주민들이며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뜻으로 정했다. ‘모이자’라는 의미도 된다.

-모이세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

 상담활동을 통해 이주민들의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돕는다. 교육양성과 활동을 통해 이주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당사자들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갈 수 있도록 활동가를 양성한다. 종교활동을 통해 정신적인 힘을 실어주고 타 종교를 존중한다. 의료활동을 통해 신체적인 아픔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거나 문화활동으로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장을 열어주는 곳이다.

-천안지역 외국인(근로자, 이주여성) 인권의 현주소는.

 천안시는 인구 56만 6953명중 1만 2151명이 이주민으로 인구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결혼이민여성이 1813명이고 7718명이 있다. 전국 지자체 중에서도 이주민 관련 조례를 2007년 제정해 타 시·도에 비해 선도적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예산이 결혼이민여성에게 집중돼 있다. 정책이나 시책 마련에도 이주민 당사자들의 의견을 전달하기가 어렵다. 천안에는 결혼이민여성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가 거주하고 있다. 지원의 근간이 중앙정부 정책에 두고 있어 차별화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 없는 정책이 아쉽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나 안타까운 일이 있다면.

 방글라데시 ‘쟈킬’이라는 친구가 노동자로 한국에 와서 4년 동안 일을 하다 귀국했다. 일하는 동안 모이세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귀국해 들어온 소식, 모이세에서 보고 배운 것을 힘으로 동료들과 함께 NGO를 만들어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고민하고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작은 활동들이 지구를 돌아 어느 지역사회의 변화에 녹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보람 있게 느껴졌다. 안타까운 일도 많다.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에서 언어소통과 문화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화가 다르고 피부색깔이 달라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몇 년 사이 다문화가 트렌드처럼 번져 정책도 봇물처럼 쏟아진다. 천안지역도 제도적으로 이주민들을 지원하는 기관이 늘어난 것은 이주민들의 한국적응을 지원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도 복지지원정책을 넘어 이주민들이 사회적·정치적인 평등성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는 더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모이세는 다문화공생사회를 위해 법과 제도상 차별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데 활동의 방향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이주민들의 다양한 공동체를 조직하고 양성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지역주민과 이주민들이 상생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얼마 전 천안시 다문화기관연합회와 함께 이주민이 주체가 된 토론회를 열었는데 이주민과 지역주민이 소통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앞으로 이주민이 주체가 돼 진행하는 다문화교육이나 문화마당의 기회를 더 많이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모두가 좋은 방향을 고민하고 갈 때 더디지만 한 걸음씩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민과 이주민의 상생사회도 그럴 것이라 믿고 있다. 아직은 ‘한국문화에 적응하도록,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미등록은 제외하고’라는 식의 겉만 요란한 다문화사회가 이주민들이 주체가 되도록 지원할 때 아름다운 다문화 상생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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