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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의 실패를 막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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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최근의 아일랜드 경제위기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유로화와 유럽연합(EU)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EU 회원국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그에 따라 회원국 탈퇴가 잇따른다면 심대한 고통이 뒤따를 게 틀림없다.

 아일랜드 위기는 은행의 안전성과 힘,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의 경쟁력에 대한 신뢰의 위기다. 그 한가운데에서 유럽의 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으르렁거리며 논쟁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유로화를 구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오히려 금융시장의 불안과 가변성을 증폭시켜 위기를 악화시키는 정반대 결과로 돌아온다.

 독일은 2013년부터 채무 손실을 은행들이 떠안는 문제에 대한 공적 논쟁을 촉발함으로써 위기 악화에 기여했다. 아일랜드 위기가 한창인 와중에 왜 이런 논쟁을 제기해야 했는지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비밀로 남아 있지만 전적으로 국내 정치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유럽에서 가장 경제력이 큰 독일은 역사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하다. 독일이 유럽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은 어떻게든 막는 게 독일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생각, 그럼으로써 ‘독일의 유럽’보다는 ‘유럽의 독일’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폐기된 것처럼 보인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친(親)유럽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지적하면 화를 내며 부인한다. 하지만 독일의 유럽 정책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독일의 유럽’ 쪽으로 추세가 기울어진 것이다.

 유로화의 실패, 즉 EU와 공통 시장의 실패는 1945년 이후 유럽이 맞는 가장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유럽 지도자들의 무지와 상상력 결핍을 반영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금융위기가 오랫동안 EU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정치위기가 돼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부채에 허덕이는 회원국을 위한 영구적인 위기 해결 메커니즘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영구적인 정치적 해결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현상 유지만으로 유로화는 생존하기 힘들 것이다. 영구적인 정치적 해결장치란 잘 작동되는 경제공동체와 다름없다. 따라서 해결책은 진짜 경제공동체를 잘 운용하거나 아니면 한 발 더 나아가 유럽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남은 대안은 단순한 자유무역지대로의 후퇴와 유럽 통합 해체가 될 것이다.

 유로화의 위기는 독일과 프랑스의 지원 없인 해결할 수 없다. 프랑스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들이 디플레이션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다. 독일은 안정을 보증해 줘야 한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화를 유지하는 대가로 다른 유럽 국가들과 ‘경제공동체’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독일 국민에게 설명해야만 한다. 두 나라는 유로화의 실패를 감당할 수 없다.

 유럽 정치지도자는 설령 직위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금융위기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올려야 한다. 유럽엔 ‘정치가’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참의미에서의 ‘정치인’들이다.

정리=예영준 기자 ⓒProject Syndicate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