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데뷔음반 낸 배우 이정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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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할 수 없는 끼를 활화산처럼 터뜨리는 열아홉 아가씨 이정현의 무대를 보는 건 짜릿하다.

우주인의 메시지를 갖고 지구로 내려온 신비한 소녀를 따라 3분간 우주 공간을 헤엄치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이정현은 96년 영화 〈꽃잎〉에서 천진난만한 얼굴 속에 은근한 성숙미를 발산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그러나 이번에 가수로 데뷔한 음반 〈레츠 고 투 마이 스타(나랑 우리별에 가요)〉는 배우들이 인기를 등에 업고 한번 내보는 '화제용 음반' 과는 차원이 다르다.

힙합스타 조PD, 한상원.정원영 밴드에서 활약하는 실력파 뮤지션 강호정 등이 참여한 이번 음반에서 이정현은 여태껏 다른 여가수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강하고 색깔있는 목소리로 테크노를 멋지게 소화해낸다.

이정현은 얼마전 댄스그룹 구피의 '게임의 법칙'과 뮤직비디오에서 신들린 듯한 춤과 랩, 핏기없는 인형처럼 차가운 메이크업으로 사람들의 눈을 붙잡았다. 이어 조PD의 '피버(열기)' 뮤직비디오에서 또한번 금속성의 랩을 선보이며 충격을 던졌다.

"직접 가수로 데뷔하라"는 사람들의 요청이 쏟아졌고 그녀는 5달동안 녹음기간을 거쳐 마침내 거기 부응했다.

스스로의 말대로라면 4년전 유럽여행에서 처음 접한 테크노 비트가 자신의 심장박동수와 똑같은데 반해 흠뻑 빠져버린 터라 장르는 금방 결정됐다.

타이틀곡 '와'는 대중적인 멜로디를 얹었지만 도입부에 국립국악원 단원 이태백의 아쟁연주를 넣어 테크노와 국악의 접목을 시도한 점에서 돋보인다. 이는 꽹과리 소리를 넣은 'GX 339-4'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신인음반답지 않게 정통 테크노로 채워져있고 실험적 시도도 풍부해 신선하고 꽉찬 느낌을 준다.

특히 뮤직비디오에 출연해준 댓가로 조PD가 지어준 'I Love X'와 '버드'에서는 이정현의 랩 실력을 즐길 수 있다.

'I Love X'는 아이들 몰래 O양 비디오를 즐기는 어른들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은 곡으로 이정현 세대의 세상인식을 알 수 있다. 여기서 'X'는 섹스를 의미한다. 또 이탈리아어와 한국어를 교차시킨 암호같은 노래 '00001 JungHyun'은 이정현이 작사한 곡으로 그녀의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음반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면서 힘이 넘친다. 가창력이 뛰어나지는 않으나 김건모같은 매혹적인 가수만이 갖고있는 독특한 주파수가 발견된다.

프로듀서 최준영은 " '여자 김건모'가 있다면 바로 그녀일 것" 이라며 밀레니엄 재목감이라 치켜올린다. 그 말이 실현되려면 그녀를 둘러싼 가요 시스템이 그녀의 자유스러움을 흥행에 구애됨 없이 최대한 북돋워 줘야 할 듯하다.

빈틈없는 방송스케쥴에 지친 그녀를 한밤에 잠깐 만났다. 어떻게 TV에서 안무도 없이 그렇게 강렬한 춤을 출 수 있냐고 묻자 그녀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아무 생각없어요. 그냥 리듬에 몸을 맡기고 마냥 춰요. 가끔 테크노바에 가보면 모두 '도리도리' 춤만 추고 있는데, 솔직히 너무 답답해요. 그냥 추고싶은대로 '막춤'을 추는게 진짜 테크노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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