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중국 사회는 사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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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요즘 중국인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 영화배우 장쯔이(章子怡)? 아니다. 리강(李剛)이라는 사람이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 10월 16일 한 고급 승용차가 허베이(河北)대학 캠퍼스에서 두 명의 여대생을 치었다. 음주 운전이었다. 그중 한 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럼에도 운전자는 차를 세우지 않고 캠퍼스를 질주했다. 차는 정문 경비의 제지를 받고서야 멈췄다. 술에 취한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소리를 버럭 질렀다. “힘 있으면 고소해, 우리 아버지가 리강이야(我爸是李剛)”. 그의 아버지 리강은 지역 공안(경찰)국 부국장. 젊은이는 아버지의 힘을 믿고 망동을 부린 것이다.

 인터넷에 관련 사실이 유포되면서 리강 부자는 ‘공공의 적’으로 등장했다. 사건을 패러디한 동영상과 노래, 시(詩)등이 아직도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다.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인)들이 공분(公憤)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 있는 분노다. ‘리강 사건’은 부정부패, 빈부격차, 권력층의 특권의식 등 중국 사회의 문제를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강은 수억원이 넘는 호화주택을 4채나 갖고 있었다. 권력형 축재가 아니면 불가능한 얘기다. 반면 차에 치어 숨진 여학생은 가난한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 노동자)‘의 딸이었다. 농민공 부모는 학비를 꾸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할 처지다. 중국 민초들은 ‘비리 권력자 아들의 횡포에 가난한 농민공의 딸이 사망했다’는 계급적 비극에 격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 법을 무시하는 권력층의 횡포에 치를 떨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리강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관영매체를 동원해 무마하거나 침묵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라오바이싱들은 이제 더 이상 참지 않는다. 인터넷에 분노의 목소리를 실어 세상에 전한다. 이번 사건뿐만 아니다. 부정부패 사건이 발생하면 인터넷은 여지없이 권력층을 비난하는 목소리로 들끓는다.

 그들의 부정부패는 체제와 관련된 문제다. 중국은 공산당이 혁명을 통해 만든 나라다. 당(黨)이 아버지라면 국가는 자식인 셈이다. 당은 아버지가 아들 다루듯 국가를 관리한다. 공산당 이외의 정치적 대안은 있을 수 없고, 용인되지도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국가의 주인인 당이 국유기업과 국유상업은행을 통해 부(富)를 통제한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마련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당 스스로 견제하고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리강 사건은 공산당의 자정 능력에 한계가 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람은 자아의식이 싹트는 사춘기가 되면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국가와 국민 관계도 그렇다. 개혁개방 30년,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중국인들은 이제 정신적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신세대들은 권력의 횡포와 지나친 간섭을 비웃는다. ‘중국 사회도 이제 사춘기로 접어드는 것인가?’ 리강 사건을 보며 던지는 질문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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