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가 만들 세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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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31면

올 초에 출시돼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어냈던 애플의 아이패드라는 태블릿 컴퓨터가 지난달 30일 국내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에서는 갤럭시탭이라는 태블릿을 내놓았다. 태블릿 전쟁이 본격화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필자는 태블릿 컴퓨터를 과거 스마트폰 때와는 또 다른 논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동안 정보기술(IT)과 인터넷 등에서 소외됐던 많은 사람에 대한 접근성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다.

올해 스마트폰 열풍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그 물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그룹이 노년 그룹이다. 아무리 커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작은 3~4인치 화면에 나타나는 글자들은 잘 보이지 않고, 남들은 좋다고 말하는 스마트폰 프로그램들도 작은 글자에다 조작조차 힘들어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았다. 유행처럼 스마트폰을 구입한 사람들도 결국엔 사용을 포기하고, 젊은이들이나 좋아하는 기기로 치부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조금 더 역사를 넓혀 생각하면, 여전히 PC의 사용도 쉽지가 않다. 인터넷을 이용할 때 마우스로 신문 읽기 같은 활동은 어느 정도 하지만, 뭐 하나라도 댓글을 달거나 글을 쓰려면 키보드를 바라보면서 ‘독수리 타법’으로 하나 둘 찍다가 모니터를 보면, 글자를 잘못 쳐서 이를 전부 고쳐야 하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야 키보드 자판을 외워서 모니터만 보면서 작업할 수 있지만, 나이 먹어서 그렇게까지 적응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의 단점으로 이야기되는 키보드를 입력할 때 화면을 가려서 불편하다는 사실은 되레 노년 그룹에게는 장점이 될 수 있다. 굳이 아래의 키보드를 보면서 치고, 그 다음에 화면을 보는 동작을 하기보다는 화면에 띄워진 키보드 자판을 보면서 독수리 타법으로 자신의 글을 입력할 수 있어서다. 이런 해석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IT에 익숙한 사람들의 경험에만 비춰 모든 것을 생각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서 아이패드가 보급되면서 노년층에 중요한 엔터테인먼트와 소일거리를 제공하고 그들도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의 과실을 같이 맛볼 수 있게 됐다는 뉴스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유튜브에는 99세 할머니가 자녀들 도움으로 조작법을 익혀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영상이 올라와 있고, 애플스토어에 줄을 서서 아이패드를 구입하는 노인들의 영상도 많이 볼 수 있다. 노인들에게는 큼직한 화면에 주로 그림과 동영상, 커다란 버튼을 이용해 조작할 수 있는 태블릿 PC가 최고의 기기일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처럼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스크린에 깨알 같은 글씨를 보고 조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젊고 IT기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기술 중심의 기기들이 나온 데 비하면, 이제는 이런 변화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을 위한 기기들이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컴퓨터 활용에 소극적이던 가정주부들도 태블릿의 열광적인 팬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볼거리가 풍부한 디지털 잡지와 동영상 콘텐트, 방송국들이 마련하게 될 주문형 비디오나 드라마 시리즈 앱 등이 인기를 끌 것이다. 요리나 패션, 소셜 쇼핑과 같은 주부들을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서비스나 프로그램들도 지속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남은 소외계층은 어디인가? 아마도 이런 첨단기기들의 가격이 비싸서 접근을 할 수 없는 저소득층일 것이다. 이제 정보 양극화와 IT 양극화는 부의 양극화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다. 이들에게도 태블릿과 같은 첨단기기들이 보급될 수 있는 저렴한 제품의 개발·생산·보급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는 ‘쉽고 싼’ 제품이 먹힌다.



정지훈 한양대 의대 졸업 뒤 미국 남가주대에서 의공학 박사학위를 땄다. 하이컨셉트&하이터치 블로그 운영자. 의학·사회과학·공학의 융합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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