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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신인왕·상금왕·다승왕 싹쓸이 … ‘골프 한류’에 긴장하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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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올해 JLPGA에서 돌풍을 일으킨 김영·신현주·임은아·이지희·전미정·안선주·이나리·김나리(뒷줄 왼쪽부터) 등 한국 여자골퍼들이 2011년 목표 우승 수를 손가락으로 나타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미야자키=문승진 기자]


일본 여자골프계에 한류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한국 여자골퍼들은 올해 일본에서 무려 15승을 거뒀다지요. 특히 안선주(23)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상금왕을 동시에 차지한 선수가 됐습니다. 더구나 내년에는 더 많은 한국 선수가 일본으로 진출할 전망입니다. 이번 주 golf&은 일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을 현지에서 직접 만나 JLPGA투어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왕중왕 가리는 리코컵도 ‘한국잔치’

지난달 28일 JLPGA투어 시즌 최종전인 일본 LPGA투어 챔피언십 리코컵이 열린 미야자키 골프장. 왕중왕을 가리는 대회로 올해 우승자와 상금 랭킹 25위 이내 선수들만 출전했다. 출전선수 29명 가운데 한국 선수는 9명. 한국 선수의 비율이 30%를 넘었다.

그런데 이 대회는 한국 선수의 축제무대였다. 박인비가 합계 1언더파로 우승을 차지했고 안선주가 공동 2위(3오버파)에 오르는 등 한국 선수들이 리더보드를 점령한 것이다. 지난해 상금왕 요코미네 사쿠라와 후도 유리, 아리무라 치에, 미야자토 미카 등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의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말도 나왔다.

대회가 끝나고 난 뒤 사회자가 올 시즌 부문별 수상자를 발표했다. 올해 4승을 거둔 안선주는 상금 1억4507만 엔(약 19억9300만원)으로 신인왕과 함께 상금왕을 차지했다. 안선주는 또 다승왕과 평균타수 1위(70.63타), 평균 퍼트 수 1위(1.75개)에 오르며 단숨에 일본 골프의 지존으로 등극했다. 2008년 아깝게 상금왕을 놓쳤던 이지희(31)에게 한국 선수들이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비결을 물어봤다.

“일본 기자들도 항상 물어보는 똑같은 질문인데 나도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검증을 받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우승할 수 있는 것 같다. 진출 첫해에 상금왕을 차지한 안선주는 정말 대단하다. 실력은 일본 선수들과 비슷한데 정신력에서 한국 선수들이 앞서는 것 같다.”

프로 대우해주는 일본 … 규율은 엄격

리코컵에서 우승한 박인비(왼쪽)와 올해 상금왕 등 4관왕을 차지한 안선주가 트로피를 들고 있다.

현재 일본 투어에서 뛰고 있는 여자골퍼는 줄잡아 19명. 한국 선수들이 JLPGA투어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상금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LPGA투어에서 뛰다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 김영(30)은 “일본은 미국에 비해 이동거리가 짧고 대부분 3라운드 대회로 열려 체력적인 부담이 적다.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상금이 커진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JLPGA투어의 또 다른 매력으로 ‘프로 대우’를 꼽는다. 전미정(28)은 “연습 라운드 때는 일반 손님을 받지 않고 선수들에게 무료로 코스를 개방한다. 예약 없이 누구나 연습 라운드를 할 수 있다. 대회마다 드라이빙 레인지는 물론 칩샷, 벙커샷 등을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고 강조했다.

대우를 받는 만큼 선수들에겐 책임도 뒤따른다. 외국 선수들은 의사소통이 자유롭기 전까지는 의무적으로 통역을 동행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내야 한다. 통역을 동행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프로암 참가자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다. 프로암에 지각하면 벌금 5만 엔(70만원)을 내야 한다. 또한 선수들은 클럽하우스 내 식당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한다. 우비를 입고 출입해서도 안 된다. 불량한 머리 스타일이나 복장 등도 엄격히 규제한다. 역시 벌금 5만 엔을 내야 한다. 일반 골퍼들에게 프로가 모범이 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공식 연습 라운드 때는 1인당 볼을 두 번씩 칠 수 있지만 세 번째 치게 되면 한 타에 5만 엔씩 벌금을 내야 한다. LPGA투어에서 뛰다 일본 무대에 뛰어든 김나리(25)는 “일본은 선수들에게 대우를 잘해주지만 그만큼 룰과 규칙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말했다.

“비가 와도 연습, 대부분 한국선수더라”

일본 선수들은 내년엔 어떤 한국 선수들이 투어에 합류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임은아(27)는 “만나는 일본 선수마다 내년엔 JLPGA투어에 누가 오느냐고 물어본다. 실력이 탄탄한 한국 선수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다들 긴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년 연속 상금왕에 도전했다 2위에 머무른 요코미네 사쿠라는 리코컵을 마친 뒤 “한국 선수들이 너무 잘한다. 누군가는 한국 선수들을 막아야 한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어떤 일본 선수는 동료에게 e-메일을 통해 “한국 선수들처럼 우리도 잘할 수 있다. 더 열심히 연습하자”며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JLPGA 홍보담당 오타니 히데아키는 “비가 와도 연습하는 선수는 대부분 한국 선수들이다.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됐다. 예전에 비해 일본 선수들의 연습량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국적보다 실력 … 차별하는 일은 없다

2008년 LPGA투어는 한국 선수들을 겨냥해 영어 의무화를 추진하다 논란이 일자 백지화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도 2008년부터 룰 테스트 때 통역 없이 영어와 일본어로만 시험을 보게 했다. 일부에서는 한국인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일본여자협회는 이를 부인했다. 오타니는 “선수들에게 미리 예상문제 30개를 통보해 준다. 이를 토대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실제로 룰 테스트에 떨어진 외국인 선수는 한 명도 없다. 프로 무대는 실력이 우선이지 언어로 평가하는 곳이 아니다.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도 차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주(30)는 “한국 선수들이 우승하면 시상식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일본 선수들이나 협회에서 한국인이라고 차별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닛칸스포츠의 기무라 유조 기자는 “외국 선수들이 우승하면 기사량이 줄어든다. 스폰서 입장에서는 홍보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선수들 사이에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면 오히려 더 흥미를 끌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에는 코리안 돌풍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한 기무라 기자는 “한국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 그런지 기본기가 탄탄하다. 한국 선수들의 스윙을 보면 모두 비슷하다. 간결하면서도 모두 파워풀하다”고 말했다.

JLPGA투어에서 선수로 활동하다 지금은 한국 선수들의 통역과 매니저를 맡고 있는 김애숙씨는 “한국 선수들도 이제는 일본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상금만 챙겨가면 한국 선수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 여자투어는 LPGA투어에 비해 이동거리가 짧기 때문에 경비가 적게 들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본의 경우 숙박료가 사람 수로 계산된다. 미국의 경우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방 하나에 2~3명이 잘 수도 있지만 일본에선 2~3명 값을 내야 한다. 미국은 콘도식 호텔이 많아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지만 일본의 경우엔 사 먹어야 한다. 캐디피는 미국과 비슷하다. 평균 주당 캐디피는 10만 엔(특급 캐디의 경우 13만~15만 엔)에 인센티브(예선통과 시 5%, 톱10 진입 시 7%, 우승 시 10%)를 별도로 지급한다. 여기에 반드시 통역을 동행해야 한다. 통역비는 대회당 3만 엔 정도. 따라서 선수·캐디·통역·매니저에 가족까지 동행하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JLPGA투어 1년 투어 경비는 평균 1억~1억5000만원 선이다. LPGA투어와 별 차이가 없다.

미야자키=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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