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가는 길은 고난의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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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 14면

“빰빰빠 빰빰빠 빰빠바바~!”
멀리서 나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시방 우렁찬 나팔 소리에 맞춰 행진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나는 행진을 계속한다. 그런데 발이 허공에 붕 뜬 느낌이다. 마음과는 달리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정제원의 골프 비타민 <138>

‘이상하다. 왜 앞으로 갈 수가 없는 거지’.
그 순간에도 요란한 나팔 소리는 계속된다. 저 나팔은 누가 부는 걸까. 이런 생각도 잠시, 나의 행진은 거기서 딱 멈춘다. 퍽 하는 파열음과 함께-. 대퇴부 부근에서 짜릿한 통증이 전해져 온다.

“빨랑 일어나! 새벽부터 알람이 울려대는데 왜 쿨쿨 잠만 자는 거야. 자기가 알람을 맞췄으면 알아서 꺼야 할 거 아니야. 공연히 옆 사람 잠만 깨게 만들고 있어.”

아내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어느새 나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새벽 골프를 나가기 위해 어젯밤 탁상시계의 알람을 맞춰놨던 기억이 난다. 술에 취해 자정이 넘어 귀가하고도 알람을 맞춰놓은 나의 정신력에 나는 스스로 갈채를 보낸다. 그런데 좀처럼 눈이 떠지지 않는다. 잠이 깨지 않는 것인지, 술이 깨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대퇴부 부근이 여전히 찌릿하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아내가 말띠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내는 알람 소리만 들리면 내게 발길질을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빨랑 일어나라고요!”
아내의 목소리 톤은 한 옥타브 더 올라간다. 아, 이제는 진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자비한 발길질 세례가 쏟아질 것이란 걸 경험상 나는 잘 안다. 나는 잽싸게 몸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눈을 비비면서 시계를 들여다본다. 새벽 5시40분, 나는 침대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오늘 티타임이 몇 시였더라. 7시20분이지 아마. 이른 아침 도로는 뻥 뚫려 있을 것이다. 골프장까지는 넉넉잡아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20분, 아니 딱 10분만 더 자도 되는 것이다. 그래 10분만 눈을 붙이는 거다. 그러고는 ‘치카치카’만 하고 집을 나서면 된다. 내 몸은 어느새 이불 속으로 빠져든다.

“난 몰라. 지금 일어나는 게 좋을걸. 당신 늦더라도 진짜 책임 안 져.”
“알았다니까. 딱 10분만 눈 붙이고 일어날 거야.”
나는 행진을 계속한다. 발걸음이 가볍다. 어느샌가 어여쁜 아가씨가 나타나 내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나는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그런데 이번엔 나팔 소리 대신 내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나팔수가 잠이라도 든 걸까. 왜 나팔 소리가 아닌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는 거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전화기를 집어든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쯤 오고 있나. 다들 클럽하우스 식당에 모여 있는데.”
상무님의 목소리다.
“네? 아, 그러니까 그게. 제가 지금 걸어가고 있걸랑요.”
“이 사람, 이게 무슨 소린가. 골프장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걸어 와.”

나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 닥치는 대로 옷을 주워입는다. 시계 바늘은 7시10분을 가리키고 있다. 티타임까지는 10분 남았다.
“그러게 아까 일어나라니까.”
아내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빠져나온다. 간밤에 먹은 술로 머리가 깨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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