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것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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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 03면

17일 오후 KBS 신관 공개홀에서 ‘개그콘서트’ 공개 녹화를 마친 개그맨들을 따라갔다. 한 치킨집에서 열린 뒤풀이 행사에서 ‘웃음을 만드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었다. 실명을 밝히길 꺼린 가운데 답변해준 개그맨들은 10년 차 이상부터 새내기까지 6명이었다.

코미디 소재 제한 너무 많아
개그맨들은 풍자 코미디를 제대로 하고 싶어도 소재 제한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라든가 직업, 무슨 협회나 단체 관련한 내용은 다루기 어렵다. 봉숭아 학당 리허설을 일곱 번 하는데, 하면서도 계속 괜찮을까 하면서 걸러낸다. 시사성 있는 개그를 하고 싶다. 그럼 희극인들의 위상도 좀 높아질 텐데.”외국과 다른 코미디 환경에 대한 푸념이다. “일본에선 개그맨이 최고 인기 연예인이라 하지 않나. 미국의 ‘새터데이 나잇 쇼’ 같은 게 한국에선 왜 안 나오나. 선진국으로 갈수록 웃음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코미디언이 인정받는다고 들었다. 그런 사회가 돼야 한다.”

유행어 저작권은 인정 안 되나
“유행어가 저작권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어렵사리 아이디어를 짜서 만든 말이 유행어가 돼도 정작 개그맨들에게는 남는 게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라는 이유로 저작권 인정을 안 해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수는 여덟 마디 이상이면 표절이라는 기준도 있는데 유행어는 없다. 목소리나 억양, 뉘앙스가 다른데 왜 안 될까. 누군가의 유행어를 광고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으면 화가 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정통 코미디보다 버라이어티 MC에 눈돌리는 세태 씁쓸
정통 코미디의 인기 하락도 걱정이다. 한 개그맨은 “정통 코미디 하다가 조금 뜨면 버라이어티나 토크쇼 MC 가야지 하는 게 어느새 순서가 됐다. 버텨주었으면 하면서도 막상 간다고 하면 잡을 수가 없다. 출연료 차이가 너무 크니까”라고 했다. KBS는 등급에 따라 출연료를 받는데 막내가 회당 38만원 정도다. 게다가 주 5일 내내 회의에 참석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매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회의를 하니 회사원과 별로 다르지 않은 셈이다. “그 주에 할 것을 그 주에 한다. 다음주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별명이 하루살이가 아니라 한주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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