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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 들인 ‘청춘극장’ 한 달 만에 헐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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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어르신 전용극장 ‘청춘극장’(사진·본지 10월 14일자 31면)이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헐릴 위기에 놓였다. 지난달 2일 7억500만원을 들여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서대문아트홀(옛 화양극장)을 리모델링해 개관한 극장 자리에 서울시와 서대문구가 24층짜리 관광호텔을 재건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관 당시 “어르신 종합문화공간으로 꾸준히 키우겠다”고 한 서울시의 발표가 한 달 만에 무색해졌다.

 8일 서울시와 서대문구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청춘극장을 숙박시설로 재건축하는 내용의 정비계획 및 정비구역 지정안이 주민 공람 중에 있다. 신현태 서대문구 도시관리과장은 “용적률 1085%를 적용받아 이곳(997㎡)에 지하 4층, 지상 24층짜리 관광호텔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달간의 주민공람 절차가 끝나면 의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안이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이와 동시에 서울시도 이 일대 건축물의 용도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정유승 서울시 도시개발과장은 “4일부터 건축물 용도에 숙박시설을 추가하는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변경안’을 주민 공람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청춘극장이 있는 자리에는 업무와 판매, 근린생활과 관련한 건축물만 지을 수 있다. 서울시는 3월 사대문 안 도심에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기본계획을 한 차례 변경했으나 옛 화양극장이 있는 이 일대가 누락돼 추가 지정에 나선 것이다. 정 과장은 “이 일대가 1970년대부터 재개발구역으로 묶여 있었던 만큼 주민들의 오랜 숙원을 풀게 됐고 도심 내에 부족한 관광호텔 공급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춘극장은 당초 만 55세 이상 어르신의 ‘도심 놀이터’라는 컨셉트로 만들어졌다. 하루에 두 번 고전영화를 틀고, 상영시간 사이에는 연극치료·웃음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입장료 2000원만 내면 어르신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월~토요일)까지 극장에서 하루 종일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었다. 문을 연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지만 어르신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헐릴 위기에 놓인 청춘극장에 대해 서울시는 “이전해 다른 곳에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무영 문화정책과장은 “청춘극장을 만들 때부터 재건축이 추진되는 것을 알았지만 서울시내 극장이 대부분 멀티플렉스라 어르신 전용 극장으로 열 곳이 마땅치 않아 일단 문을 연 뒤 다른 자리를 물색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또 “2012년이 지나야 호텔 공사가 시작될 전망이라 그 기간 중 극장을 잘 운영한다면 리모델링비로 들어간 1억여원은 회수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반발은 거세다. 청춘극장에 일주일에 다섯 번을 온다는 정영주(81·홍제동)씨는 “이 공간 덕에 몸도 건강해지고 활기도 찾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며 “다른 곳에라도 반드시 다시 열어야 하고 만약 없어진다면 노인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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