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의 잘잘못과 국회의 예산 심의는 별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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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국회의 기본 책무는 입법과 예산이다. 국민이 자신들의 대표로 국회의원을 선출한 것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이 일을 성실히 해달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예산은 내년도 나라 살림을 계획하는 것이어서 공을 들여 따져야 하고,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다. 매년 기간을 정해 정기국회를 여는 것도 그런 이유다. 따라서 이 일은 어떤 구실로도 포기하거나 방치할 수 없다. 더구나 자신들의 특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어제 국회는 상임위별로 2011년도 예산 심의에 착수했다. 하지만 검찰의 청목회 수사에 반발한 야당 의원들이 예산 심의는 제쳐놓고 항의성 의사진행 발언만 하는 통에 파행(跛行)을 거듭했다. 사실상 예산 심의가 전면 중단된 것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임위별 예산 심사나 법안 상정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장외(場外) 투쟁에 나서거나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한다.

 물론 소액 후원금을 문제 삼아 국회의원 후원회를 압수수색한 것은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과거의 관례라면 그 정도의 후원금까지 뒤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분명히 국회에서 만든 정치자금법에 위배된 불법행위다. 자신들이 만든 법에 따라 수사하는 검찰을 비난하며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과잉 반응이다. 국민은 법 적용에는 어떤 성역(聖域)도 없기를 바라고 있다. 서민은 조그만 잘못만 저질러도 처벌을 받는데 정치 권력은 웬만한 불법행위쯤은 눈을 감아줘야 한다면 누가 수긍을 하겠는가.

 야당 대표들은 어제 검찰 수사에 대한 대책으로 검찰의 민간인 사찰 부실수사, 청와대 대포폰 지급, ‘스폰서 검사’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고 미진하면 특검(特檢)을 요구하기로 합의했다. 사실 ‘대포폰’ 문제 등은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어 검찰 수사가 미진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러나 당당하게 주장해야 할 이런 문제를 검찰수사에 연계하는 것은 정치적 방어막을 친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이런 시점에 정치자금법을 고치자느니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자느니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시키는 꼴이다.

 예산 심의는 국회의원으로서 의무이지 자기 보호를 위한 방패나 위세를 부릴 권력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309조원이 건성건성 날치기 처리해도 되는 사안인가. 예산뿐이 아니다. 유통법과 상생법, 감세(減稅) 문제 등 서민경제 관련 현안, 4대 강 사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아랍에미리트 파병 동의안 등 산적한 현안들은 어찌할 건가. 어떤 이유로도 예산 심의와 법안 심사를 포기해선 안 된다. 검찰 수사에 잘못이 있다면 별도의 장에서 준열하게 따지고 비판하면 된다. 검찰 수사를 볼모로 국정 심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배임·배신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