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으로 표적 이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간인 사찰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민간인 불법사찰에서 번진 청와대 ‘대포폰’ 지급을 둘러싼 정치 공방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우선 민주당은 4일 ‘강기정 의원 발언 파문’에서 한 발을 뺐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영부인 얘기는 이 정도로 끝내자”며 “강기정 의원도 내가 설득했다”고 말했다. “상당한 백업자료를 갖고 있다”(3일 최고위원회의)는 하루 전과는 확연한 차이다. 특히 박 원내대표는 “제 경험상 영부인 문제를 너무 많이 말하는 것도 국민들로부터 그렇게 좋은 (모양새로 비치지는) 않는다”며 “우리의 금도는 금도대로 지키자”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민주당의 이런 입장 정리는 “대포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민주당 당직자)이라고 한다.

 박 원내대표는 “(강 의원 발언으로) 대포폰이 묻혀가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실제 청와대가 대포폰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지급한 사실을 맨 처음 폭로한 이석현 의원은 “대포폰을 만들어준 청와대 최모 행정관을 시내 모처에서 몰래 조사했다고 법무장관이 시인했다”며 “서울중앙지검장이 조사에 반대했으나 수사팀이 강력하게 주장해 조사했다는데 지검장은 왜 반대했는지를 밝혀라”고 주장했다.

또 “‘BH(청와대) 지시사항’이라는 수첩 메모와 청와대(에서) 대포폰까지 만들어준 사실을 검찰이 모두 파악했으면서도 수사하지 않은 것은 외압에 의한 결정이 아니냐”고 압박했다.

 박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당력을 모아 다른 야당과 함께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지도부 내에서도 기존 입장과 다른 목소리가 일부지만 나왔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민간인) 사찰사건의 수사 양태를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BH 지시사항’이라는 메모가 이미 나왔고, 대포폰이 지급됐다는 사실이 나왔음에도 검찰이 적당히 넘어가려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재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사찰의 피해자로 거론되는 남경필 의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사의 신뢰성이 점점 추락하고 있다”며 “결국 재수사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자체 조사 결과 ▶문제가 된 휴대전화기가 ‘대포폰(명의가 불분명한 전화기)’이 아닌 ‘차명폰(다른 사람 명의로 대여한 전화기)’이고 ▶대수도 5대가 아니라 1대 ▶이 전화기를 총리실 직원에게 빌려준 기간도 하루뿐이라는 것이다. 민정라인 관계자는 “고용노사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이 부탁하자 갖고 있던 전화기 중 한 대를 빌려준 뒤 다음 날 받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글=백일현·강기헌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