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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의 감격'다시 꿈꾸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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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본 도쿄역의 신칸센(新幹線) 플랫폼에는 일화개천하춘(一花開天下春)이라는 자그마한 동판이 있다. 한 송이의 꽃이 천하의 봄을 연다는 문구다. 이것은 일본의 고속철도 건설 주역인 소고 신지(十河信二) 일본국철 총재를 기리는 내용으로 신칸센이 오늘날 일본의 경제대국을 선도했다는 의미다.

당시 일본의 신칸센 건설계획은 이것에 반대하는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었으며 이 사업을 추진했던 주체들은 역사적 사명감으로 난관을 극복했다고 한다. 지금 시점에서 일본 신칸센이 일본의 경제.사회적으로 차지하는 엄청난 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일본의 경험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한 교통망 연결사업과 한반도종단철도(TK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사업을 떠올리게 된다.

'경의선은 철도가 아니라 경제'라고 이야기하던 그 열의와 관심, 뜨거운 국민적 성원과 감격 속에서 치러졌던 기공식의 추억, 한.러 정상의 굳게 잡은 손을 통해 확인됐던 대륙을 향한 우리의 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지금은 싸늘한 무관심과 냉소만이 흐르는 사업으로 전락되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금강산 관광의 길목에서, 개성공단을 오가는 도중에서 우리의 자재로 건설된 북측 구간의 철도 레일 위에 불그스레한 녹들이 조금씩 번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과연 무엇이 이 길을 막고 있는지 수없이 자문을 해본다. 사업의 부진 원인을 북핵 사태와 6자회담의 부진, 혹은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 및 러시아의 입장 변화 등에서 찾으려는 시각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새로운 각오로 이 문제를 다시 바라볼 때다.

2003년 말 노무현 대통령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 간의 합의로 2004년 봄 어렵게 남북.러 철도전문가가 모스크바에서 전문가 회의를 가진 바 있다. 국가 정상 간의 노력으로 모처럼만에 맞이한 절호의 기회였다. 이 회의를 통해 남북.러 3국의 전문가들은 각국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향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공감대를 형성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회의가 끝난 지 벌써 1년이 돼 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구체적 진전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1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수많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한 철도망과 대륙철도 연결사업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서 반성할 것이 없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남북한 교통망 연결사업은 일과성의 이벤트사업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내일을 제시하는 미래의 이정표와 같은 절체절명의 사업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들은 과감히 해소돼야 한다.

만약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면, 국민과의 격의 없는 대화로, 부처 간 이기주의가 존재한다면 정부 내의 조정기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북측과의 대화 부재가 원인이라면 북측을 불러내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전담 부서만의 일이 아니며, 범부처적으로, 그리고 민관의 영역을 넘어 추진돼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 및 환경이라는 것은 민족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살펴볼 경우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며 우리 힘으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수준의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남북한 철도망과 대륙철도망 연결사업은 경제학의 기초수준에 나오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문제, 투자의 경제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 민족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역사의 무게 속에서 우리의 당면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임진강가에도 위대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봄이 오고 있다. 한 송이의 꽃이 피어 천하에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듯, 남북한 교통망과 대륙철도망 연결사업의 성공적 추진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알리는 꽃 소식의 전달자가 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해 본다.

안병민 교통개발연구원 대륙철도연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