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또 일 교과서 왜곡 파동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종군위안부.강제연행 등의 용어는 애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뒷날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자들이 지어낸 용어다." 일본 문부과학성 정무관(차관급)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주장이다. 숱한 증언과 자료로 입증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억지 논리다.

그가 '근린제국(이웃의 여러 나라)조항'을 문제삼고 나온 것은 예상되던 수순이다. 그는 지난 6일 "근린제국조항 때문에 예전보다 더 철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의한 자학(自虐)사관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근린제국조항은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표기했던 1982년 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만든 교과서 검정기준이다.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 조항에 근거해 2001년 문부성은 우익단체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원고에서 무려 137곳의 표현을 고쳤다. 그럼에도 교과서 내용은 침략전쟁 미화와 사실 왜곡으로 점철돼 있다. 만약 근린조항이란 안전판조차 없었더라면 도대체 어떤 책이 나왔을까.

시모무라의 상관인 문부상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도 똑같은 역사인식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종군위안부.강제연행 표현이 줄어들어 참 잘됐다"고 공개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 전에는 우익단체의 주장을 대변한 '역사교과서의 의문'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이 교과서 검정 주무부서의 수뇌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모무라는'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의원모임의 활동목표는 종군위안부.강제연행 표현 삭제와 근린제국조항 철폐다. 아사히 신문은 9일자 사설에서"의원모임 사무국장을 정무관에 임명한 고이즈미 총리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다음달 초엔 2006년도부터 4년간 사용될 중학교 교과서의 검정결과가 발표된다. 문부성 수뇌부의 인적 구성으로 보건대 또 한번 2001년의 교과서 왜곡 파문이 재연될 조짐이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