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화상 받은 ‘엘 시스테마’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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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2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제10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71·베네수엘라·사진) 박사.

지휘자·작곡가이자 경제학자인 그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로 대표되는 사회적 상생 시스템을 창안하고 운영하면서 빈곤층 청소년 교육 및 사회복지를 개선하는 데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장과 상패, 미화 20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아브레우 박사는 36살이던 1975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청소년 11명을 모아 악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빈민가 차고에서 관현악 합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엘 시스테마’의 첫 걸음이었다. 마약과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던 빈민가 아이들은 클래식 교육을 통해 협동과 이해·질서, 책임과 의무 등의 가치를 배웠다. 그리고 그들은 방황을 접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해 건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오케스트라의 취지가 알려지자 베네수엘라 정부와 세계 각국 음악인, 민간 기업의 후원이 이어졌고 ‘엘 시스테마’는 날로 성장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만 37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엘 시스테마’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을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만 6000명이 넘는다. ‘엘 시스테마’는 이제 베네수엘라를 넘어 중남미·스페인·포르투갈 등 라틴권 전체의 사회개혁 프로그램으로 확산 중이다.

 35년째 ‘엘 시스테마’를 이끌고 있는 아브레우 박사는 “개인적 영광일 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를 대표해 큰 상을 받게 돼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인류가 음악을 통해 서로 좀 더 마음을 연다면 전쟁과 고통, 폭력 대신 평화가 넘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어린이들에게 음악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 만큼 더 큰 축복은 없다”며 “음악은 어린이들의 영혼을 되살리고 기쁨과 희망을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음악의 힘’을 강조했다.

 아브레우 박사는 “한국은 그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은 나라”라며 “그 어떤 나라보다 음악 교육과 악기 제공에 도움을 준 사람이 많은 곳이 한국”이라며 한국과 인연을 소개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념하고 인류화합과 세계평화 정신을 발전시키고자 제정된 서울평화상은 1990년 제1회 수상자로 지금은 고인이 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선정한 뒤 2년마다 시상하고 있다.

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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