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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50달러 시대, 살 길은 절약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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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50달러를 넘었다" "두바이유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국제유가의 기록 경신 보도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절약'이라는 단어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과거 두 차례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정부의 강력한 주도하에 '한 집 한 등 끄기'나 '승용차 10부제' 등 범국민적 에너지 절약 운동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왔고, 사회 전반적으로 절약 마인드도 강했다.

그러나 근래 에너지 절약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아마도 과거 일부 행정편의적 에너지 절약시책에 대한 반발과 에너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기인한 것이리라. 물론 이런 전망은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탈석유의 첨단산업 중심으로 많이 개편됐고, 가속되리라는 것과 지금의 고유가는 공급과잉 우려에 대한 일시적 반작용이라는 것에 근거한다.

그러나 프린스턴대 드피에스 교수의 '종형곡선 이론'에 따르면 석유 생산량은 2004~2008년 정점을 이룬 후 하강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모래석유(Oil sand).유혈암(Oil shale) 등의 자원 개발이 이뤄져 그 시기에는 이견이 있겠지만 화석연료 고갈과 가격 급상승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유가 상황에 매우 취약하다. '에너지 해외의존도 97%, 세계 3대의 원유 수입국'은 자원 빈국인 우리의 현주소다. 또 '경제규모 세계 13위, 에너지 소비량 세계 7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뒤처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나타낸다. 유가 상승은 산업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한 민간연구소에 따르면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1.7% 오르고, 경제성장률은 1.3% 감소하며, 무역수지는 100억 달러 줄어든다고 한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에너지 절약을 통한 수입 절감 효과가 지대하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수입하는 데 500억 달러를 썼다. 평소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해 10%만 줄여도 50억 달러를 아낄 수 있으니, 에너지 절약은 제2의 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의 유한성 때문에 앞으로는 에너지 자원을 먼저 확보하는 나라가 세계경제를 주도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에너지 자원의 확보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에너지 자원 확보에는 적과 동지가 따로 없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가 미국.영국.일본.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사활을 건 석유 쟁탈전에서 우위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화석연료를 대신할 미래 에너지의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우리나라도 태양열.풍력.수소에너지 등 대체 에너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현재 2% 수준에서 2011년까지 5%까지 올리겠다는 정부 계획을 보면, 그 기술 수준이 상용화돼 화석연료를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것은 아직은 먼 이야기인 듯하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은 바로 절약이다. 써야 할 에너지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낮은 부문의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는 에너지 가격정책을 재정립해 수요자에게 절약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아울러 에너지 저소비형 사회로의 전환 촉진, 신재생에너지 확대 보급, 해외자원 개발 확대 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적극 강구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업계는 자원 절약 유도를 위한 수요관리형 요금체계 개발, 에너지 효율 기기 제작기업 지원, 해외 에너지 자원 개발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일반기업과 국민도 유가 50달러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해 지속적인 에너지 절약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은 생산성 향상으로 비용 인상 요인을 흡수하고, 국민은 컴퓨터 등 전기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코드를 뽑아 두는 등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생활의 지혜를 최대한 활용해 에너지 절약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