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 제1야당답게 내분 수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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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행정도시특별법의 국회 통과 후 벌어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내분이 점입가경이다. 행정도시법 반대파는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집단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당 지도부는 반대파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는 상황이다. '수도 분할' 이전에 한나라당이 먼저 갈라질 것 같은 모습이다.

양측의 원색적 감정 표현은 보기에 딱하다. 반대파 의원들은 "박근혜 대표가 대권에 눈이 어두워 여당의 손을 들어 주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비난했다. 박세일 정책위의장은 항의의 표시로 당직에서 물러나고 의원직 사퇴서까지 제출했다. 정책조정위원장 6명 중 5명이 줄줄이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런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부는 "사퇴서를 내면 즉각 처리하겠다"면서 "나갈 테면 나가라"고 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쯤 되면 막가는 정당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같은 당 동료 의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기 어렵다.

한나라당이 더욱 한심한 것은 행정도시법에 대한 당내 의견 수렴과정의 문제점 때문이다. 이 정도로 격렬하게 반대할 작정이었다면 당론 결정이 이렇게 되지 않도록 진작에 적극 나서야 했다. 산발적으로 한두 마디 한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반발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원들을 진지하게 설득한 흔적이 없다. 당정책을 생산하는 정책위 당직자들이 대거 반발한 것은 사전 정지작업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러니 행정도시법 통과와 과거사법 처리 연기를 맞바꿨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법안에 대한 당론을 결정하는 의원총회에 소속 의원의 3분의 2밖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런 한나라당의 모습에 국민의 실망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어 제1야당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건강한 야당 없이 권력의 견제는 불가능하다. 당장 리더십과 당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국민은 새 야당을 기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