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한강을 살리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한강 위에서 보냈던 다섯 주일 동안, 매일매일 생활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단조로움은 전혀 없었다. 새로운 나라의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들은 자유롭게, 지나칠 정도로 자유롭게 뒤섞여 지냈다. 풍경은 시간마다 변하였는데 처음 며칠이 지난 다음부터는 점점 아름다워질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웅장하고 놀라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른 봄의 아름다움 속에서 나무들은 녹색과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깨어나 생동하고 있었다. 꽃과 나무들은 절정에 달해 있었고 새들은 덤불 속에서 울고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히 물 위를 떠돌았다……한강의 물은 수정처럼 맑았고 그 부서지는 물방울 조각들은 티벳의 하늘처럼 햇살에 반짝거렸다.”(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이인화 역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이 담대한 여성,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그녀 나이 63세인 1894년 4월 14일 마포 나루터에서 거룻배 한 척을 빌려 타고 4명의 동행과 함께 5주간의 한강 탐사에 나섰다. 양평 양근리를 지나 남한산성을 비껴 용안사와 벽절(절벽에 서 있는 절, 신륵사)을 거쳐 19일에야 민비의 생가 여주에 도착한다. 출발은 더뎠지만 점차 항해 속도가 붙으면서 청풍 단양을 거쳐 도담 삼봉의 절경에 놀라고 영충의 급류에 밀려 배를 돌린다. 다시 마재 두물머리로 돌아와선 가평을 거쳐 춘천을 지나 ‘황폐한 종착지 구무뇨’에서 되돌아 서울로 온다.

 110여 년 전 한강의 자연과 한국의 세시풍속기를 녹화 영상처럼 다시 볼 수 있는 비숍의 여행기는 정말 소중한 자산이다. 마포에서 여주까지 가는 데 뱃길로 5일이 걸린 데는 급물살과 얕은 개울이 반복된 탓이다. 강을 준설하지 않아 강물의 폭과 깊이가 들쭉날쭉해 배를 끌어 올리는 데 반나절이 걸리기도 했다. 그 후 나라는 망했고 산하는 방치됐다. 물은 부족하고 강은 말라가고 있다. 기상 이변에 집중 호우로 장마가 지지만 물을 가두는 시설이 없으니 중동의 사막국가와 함께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 지 오래다. 물을 가두고 흐르게 해서 보존도 하고 오염도 막자는 계획이 4대 강 사업이다. 정부 수립 이래 최초의 본격적 치산치수(治山治水) 국토보존사업이다.

 여기에 발목 잡고 늘어지는 세력이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 반대의 첫 이유가 대운하 사업과 같다는 의혹이다. 이는 이미 끝난 얘기인데도 흘러간 테이프처럼 계속 틀어댄다. 대운하가 되려면 보의 높이가 적어도 20m는 돼야 하는 건 상식이다. 한강엔 양평∼여주 간 8m 보를 3개 세울 뿐이다. 운하가 되자면 최소 수심이 6m 이상 돼야지만 이곳 수심은 고작 3m다. 강을 준설해 여주대교가 홍수로 범람하는 사태를 막자는 장치다. 비숍의 한강 탐사 기록을 읽으면서 나는 차라리 운하처럼 뱃길이 열려 전국을 거룻배로 유람하는 낭만을 즐겨 보았으면 한다. 그러나 부질없는 공상일 뿐, 이미 팔당댐에 걸리고 청평댐으로 막히는데 무슨 수로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할 것인가.

 다음 4대 강 사업 반대 이유가 보를 세우면 물이 정체되어 수질을 악화시키고 환경파괴를 불러온다는 주장이다. 팔당댐이 세워진 뒤 2010년 5월의 팔당 수질은 지난 10년 만에 가장 좋은 수질을 확보하고 있다(BOD 1.1ppm). 물을 가둔다고 오염되는 게 아니다. 상수원 오염물질을 차단시키고 풍부한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면 수질은 개선되고 생태계가 되살아난다는 방증이다. 가동보를 설치해 풍부한 수량을 흘려주고 필요시 수문을 열어 오염물질을 제거할 수도 있다.

 팔당 상수원 인근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생가가 있고 그 옆에 실학박물관이 세워졌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환경 심의에 문화재 심의를 거치느라 무려 5년여 세월이 흘렀다. 박물관 개관 후 많은 관람객이 찾지만 잠시 다리를 쉬며 커피 한잔 마실 구내 카페테리아 설치도 불가다. 상수원 인근에 식당시설을 허가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두물머리 한강 상수원 하천부지에 유기농가가 들어서 마치 4대 강 반대의 메카인 양 경기도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경기도는 팔당 상수원 안에서 농사를 지으면 퇴비의 인과 질소가 녹조현상을 일으켜 물을 오염시키니 생태공원을 만들자는 것이고, 유기농들은 유기농이 수질을 맑게 하고 내년 국제유기농대회를 유치해 놓고 유기 농지를 없애려 하느냐고 대들고 있다. 유기농의 수질 오염 여부는 전문가에게 맡기자. 그러나 국가 소유인 하천부지를 무단 점유해 농사를 짓겠다는 그 막가파는 무엇이며 상수원 한복판에서 생활하며 내쏟는 그들의 생활오수는 또 어떻게 하나.

 한강을 흐르게 하라. 생명력 넘치는 한강으로 흐르게 하라. 반대를 위한 4대 강 반대는 4대 강 사업이 완성되는 바로 그날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