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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갈등,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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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인도의 신 인드라가 살고 있는 궁전은 복잡한 그물로 덮여 있다. 각각의 그물코에는 보석이 달려 있다. 보석들은 서로를 비추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물 한 쪽에서 일어난 파동은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이 보석을 통해 증폭되고 그물 전체로 퍼져 나간다. 화엄경에 나오는 이 인드라 그물 이야기는 중국 베이징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 뉴욕에 태풍이 불어닥친다는 '나비 효과'와도 통한다.

달라이 라마는 생명.생태계를 인드라의 그물과 같은 것이라고 설파한다. 생명은 어느 것 하나 뗄 수 없이 연결된 유기적 통합체이고 홀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에 반대해 단식했던 지율 스님도 인드라의 그물을 생각했다. 스님 자신과 천성산.무제치늪.도롱뇽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에서 도롱뇽을 지키기 위한 소송을 진행했고 단식했다. 단식 중에도 도롱뇽을 접었다.

그러나 사업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터널은 공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고 도롱뇽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것이다. 고산습지와 터널은 암반층으로 차단돼 있고 만일 터널로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더라도 누수를 차단하면 다시 회복된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 국가의 중요한 사업을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수도자와 속인이라는 신분 차이만큼이나 양쪽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100일간의 기나긴 단식에도 타협이나 해결책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상당수 환경단체조차 어정쩡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던 정부가 스님의 환경조사 요구를 수용했다. 그러나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양쪽이 모두 결과를 과연 흔쾌히 수용할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환경조사가 더 큰 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에도 환경론자와 개발론자가 머리를 맞댄 적이 있었지만 결과는 늘 좋지 못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 탓이다.

환경단체는 타당성도 없는 사업을 밀실에서 결정해 밀어붙인다고 불평이다. 자연을 훼손하는 것뿐 아니라 부실공사를 낳을 것이라고 불안해 한다. 개발사업자는 환경단체가 꼭 필요한 사업마다 발목을 잡는다고 불만이다. 현장과 공학을 모르면서 함부로 나선다고 불쾌해 한다.

끝없는 불신과 갈등은 그대로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으로 쌓인다.

정부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서둘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개발사업에 대한 사전환경성 검토를 강화하고 지역주민.시민단체.전문가의 의견을 처음부터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건설교통부.산업자원부 등 세 부처의 고위 공무원과 환경단체 간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 개발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고, 아무리 여러 번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도 불신의 벽이 가로놓여 있는 한 해결책은 나올 수 없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먼저 상대방을 인정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하다. 개발사업을 통해 우리의 삶이 편리하고 안락해졌음을, 환경단체의 시위로 인해 오염사고와 자연훼손을 줄일 수 있었던 점을 인정해야 한다.

"협상은 겉으로 뭔가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맞춰나가는 것"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화두인 지속 가능한 발전도 개발과 보존 양쪽이 생각을 맞춰나갈 때 실현할 수 있고 천성산 조사단에 참여한 양측도 서로를 존중할 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최상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