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문장원씨 3월 동래 입춤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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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 입춤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는 문장원씨. 신인섭 기자

중요무형문화재 18호 동래야류 예능보유자인 인간문화재 문장원씨. 올해 여든여덟 살인 그가 무대에 오른다. 다음달 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이란 무용 공연을 통해서다.

10여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평소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하지만 피리.장고.대금.아쟁 등으로 이루어진 시나위 장단만 들으면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그다. 2002년 호암아트홀에서 있었던 그의 공연을 지켜본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지팡이를 던져버리는 동작부터가 예술이었다고 말한다.

문씨가 이번에 선보일 춤사위는 2002년과 같은 동래 입춤. 허튼춤이라고도 불리는 동래 입춤은 술자리에서 흥이 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따라하는 전통 춤동작과 흡사하다. 25일 문씨는 "보통 입춤 공연은 12분 정도지만 이번에는 15분 이상 춰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고를 치는 김청만씨, 징을 맡은 정영만씨, 대금의 원장현씨 등 반주자들이 좋아 공연 시간을 늘렸다는 것이다. 문씨는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다리를 높이 올리는 동작 같은 것은 하기 힘들지만 멋있고 한스러우면서도 흥겨운 춤사위를 보여주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문씨의 춤꾼 경력은 그가 10대였던 1930년대에 시작됐다. 화려했던 풍류 경험 덕분이다. 그는 당시 함경도의 백천온천, 황해도의 신천온천과 더불어 3대 온천장으로 꼽혔던 부산 동래온천 일대를 누비던 한량이었다. 지금도 봉래관.동래관.내선관.동운관 등 요정들은 물론 카나리아.나이루바.프린스 같은 이름의 카페 이름을 외고 있다. '놀아봤던' 기생이 200여 명이 넘었다는 그는 기방과 요정을 드나들며 기생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춤사위를 전수받았다. "하루 저녁에 몇십원어치씩 술을 사먹으며 요정의 예기(藝妓)들로부터 춤을 배웠다"는 것이다. 당시 물가는 80㎏ 쌀한가마니가 15원, 요정 기생의 기본 화대가 1원 20전 정도였다. 김기옥.김귀조.최소학 등 명무들을 사사한 뒤 그도 당대의 춤꾼 반열에 들게 됐다. 일제시대 때 레코드 회사 직원으로, 해방 후 세무 공무원으로 또 새끼줄 가공회사 부사장으로 옆길을 걷기도 했지만 60년대 이후 모든 것을 접고 동래의 풍류를 살리는 데 전념해왔다.

문씨는 "요즘 춤은 해설을 봐야만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관객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점점 난해해지는 현대 무용을 꼬집었다. "흔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과 멋과 애환이 춤사위에 서려 있어야 춤이다"라는 게 문씨의 지론이다.

그는 "매일 아침 한시간 이상 춤사위를 연습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그가 65년 동래야류 민족예술연구회를 설립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글=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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