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몸싸움 …‘불편한 진실’도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14일(현지시간) 칠레 코피아포 시내의 한 병원에서 33명의 광부와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앞줄 오른쪽에서 다섯째)이 한자리에 모였다. 광부 마리오 세풀베다가 지하갱도에 갇혀 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당시 주로 취했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코피아포 로이터=연합뉴스]


‘지하 감옥’을 벗어난 칠레 광부 33인이 14일(이하 현지시간) 산호세 광산 인근 코피아포 병원에 다시 모였다. 이들은 구조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건강검진을 받은 뒤 요양 중이다. 일부는 폐렴·치주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대부분 양호한 상태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이날 병원을 방문한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25일 대통령궁에 33명의 광부와 그 가족 전원을 초대했다고 보도했다. AP는 피녜라 대통령이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을 함께 초청해 축구 시합을 벌이자”며 “지는 팀은 광산으로 돌아가기로 하자”고 농담을 건넸다고 전했다. 광부들은 15일께 퇴원해 가족 품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칠레 정부는 후유증에 대비해 이들에게 6개월간의 의료 지원을 약속했다.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광부들은 일약 ‘국민 영웅’이 됐다. 전 세계 언론사들이 거액의 대가를 제시하며 인터뷰·토크쇼 출연을 요청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럽 명문 구단으로부터 “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오라”는 초청도 받았다.

특히 리더이자 마지막 구조자인 루이스 우르수아, 매몰 기간 중 딸이 태어난 아리엘 티코나, 지난 2월 발생한 칠레 대지진 생존자인 라울 부스토스 등 이색적인 에피소드를 가진 광부에게 러브콜이 집중되고 있다. 69일간 일기를 써온 빅토르 세고비아의 형 페드로는 “칠레뿐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매체에서 빅토르의 일기 원고를 요청하며 5만 달러(5500만원)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광부들이 구조 전 TV 출연과 인터뷰, 책 출간 등을 통해 얻은 이익을 33명이 공평하게 나누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통신은 “향후 예상되는 막대한 이익을 두고 갈등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한편,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생환 광부 리차드 비야로엘(27)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69일간의 생활상을 소개했다. 비야로엘은 “생존 사실이 알려지기 전인 17일 동안은 죽을 날만 기다리던 최악의 상황이었다”며 “최소한의 음식으로 버티며 자기 몸을 갉아먹는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식인(食人) 공포에 시달린 적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외부와 연락이 닿은 이후에 농담 소재로 식인에 대해 언급한 적은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인간 승리 드라마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도 공개했다. 광부들 간에 파벌이 있었고 의견 불일치와 몸싸움도 빈번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지하로 내려보낸 카메라를 통해 광부들의 모습이 처음 공개됐을 때 33명 중 28명만 화면에 등장한 것이 분열의 증거라고 전했다. 화면에 나오지 않은 5명은 인력 파견 업체 소속으로 한때 독자적으로 터널을 파서 탈출할 궁리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스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