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좌 추적 법원 승인받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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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을 포함한 국가기관이 금융 계좌를 추적할 때 반드시 법원의 승인을 거치게 하는 방안이 정치권에서 추진되고 있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23일 국가기관이 금융기관에 금융거래 정보를 요구할 때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 실명 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권 의원은 "국가기관에 대한 금융거래 정보 제공은 매년 20만건이 넘는데 감시장치가 부족해 무분별한 개인 금융 정보 유출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법원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면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이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현행 금융실명거래법은 금융기관이 예금주 본인의 동의 없이 3자에게 거래 정보를 제공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감사원.국세청.금융감독위 등 10여개 기관은 금융실명거래법상의 예외 규정에 근거해 당사자 동의 없이도 금융거래 정보를 제출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또 감사원법.공직자윤리법.공정거래법.국세징수법 등 10개 법률에도 국가기관이 금융실명거래법의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금융거래 정보를 제출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들어 있다.

이 중 검찰 등 수사기관과 선관위의 계좌 추적은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나머지 기관은 외부 견제장치가 없어 계좌추적권을 남용할 소지가 많다고 권 의원은 지적했다.

국가기관에 대한 금융거래 정보 제공은 2001년 26만6992건, 2002년 25만5891건, 2003년 24만2992건을 기록했으며 지난해는 3분기까지 22만6625건으로 집계돼 전체적으론 30만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2003년에 가장 많이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받은 기관은 검찰 등 수사기관으로 8만7655건이었으며 국세청 6만6956건, 지방자치단체 5만7018건, 공직자윤리위 1만5151건, 금융감독위 9047건의 순이다.

이와 함께 개정안은 국정조사를 벌이는 국회의 위원회가 의결할 경우 금융기관이 금융거래 정보를 직접 국회에 제출토록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현행법은 국회가 의결하더라도 일단 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를 경유해서만 거래 정보를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그동안 야당은 "이 조항을 빌미로 정부 측이 고의적으로 자료 제출을 늦추거나 거부했다"고 주장해 왔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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