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저신용자 잘라내는 대출금리 인하 해봐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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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인하 폭은 서로 짠 듯이 비슷했다. 선두업체인 현대캐피탈이 발표한 걸 다른 업체들이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식이었다. 대형 캐피털사가 화들짝 놀라 한꺼번에 금리를 내린 것을 보고 ‘역시 대통령 말 한마디가 세긴 세다’는 반응이 나왔다. 업계와 금융당국 모두 ‘자발적’ 인하라고 강조했지만, 곧이 곧대로 듣는 사람은 적었다.

‘최고금리 5%포인트 인하’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최고금리는 5%포인트 끌어내리되, 나머지 금리는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다. 업체들이 평균금리가 아닌 최고금리 인하를 발표한 것 자체엔 나름의 꼼수가 숨어 있던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1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선 이런 내용이 확인됐다. 대형 캐피털사의 실제 금리인하 폭은 평균 2.1%포인트에 그쳤다. 롯데캐피탈(1.6%p), 우리파이낸셜(1.2%p), 씨티캐피탈(0.7%p)의 인하 폭은 더 작았다.

애초에 등 떠밀려 금리를 내릴 때부터 이런 상황은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업계에선 이것도 할 만큼 한 것이라는 반응이다. “금융당국이 규제를 완화해 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금리를 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의 인하 폭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금리를 내린 건 긍정적이지만 추가 인하 여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 아주캐피탈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캐피털사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렇게 압력이 더 높아지면 캐피털사도 금리를 더 내릴지 모르겠다. 한 은행계 캐피털사 관계자는 “사실 금리 내리는 건 쉽다”고도 한다. 고금리 저신용자를 잘라내면 금리는 자연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차피 캐피털사 고객 중 9~10등급의 저신용 대출자의 비중은 2.1%(올 상반기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인위적인 금리인하 탓에 정작 혜택을 봐야 할 사람들이 배제된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 태우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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