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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서 1등 기업 일궈 라오스경제 10% 좌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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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 22면

오세영(왼쪽) 코라오 회장은 중고차 조립 판매를 발판으로 물류·건설·은행 사업 등에 진출해 연간 매출 4억 달러가 넘는 라오스 최대의 민간 기업을 일궜다. 비엔티안(라오스)=김현동 포브스코리아 기자

“무역부서에서 3년, 내수부서에서 3년 일을 배운다. 그 다음 회사를 그만둔다.” 신입사원은 당차고 겁이 없었다. 업무용 다이어리 첫 장에 자신의 목표를 이렇게 적었다.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 원하는 부서로 보내달라고 통사정했다. 다행히 희망대로 수출 업무를 맡았다. 처음엔 유럽, 다음엔 베트남을 담당했다. 이제 막 개혁·개방의 시동을 걸기 시작한 베트남은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뛰쳐 나왔다. 그 결단은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놨다.

‘라오스의 정주영’ 오세영 코라오 회장

라오스 최대의 민간 기업 코라오그룹 오세영(49) 회장. 맨손으로 대기업의 성공 신화를 이룬 그가 마침내 금의환향(錦衣還鄕)한다. 상장기업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온몸을 바쳐 사업체를 일군 지 꼭 20년 만이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최근 코라오그룹의 핵심 기업인 코라오홀딩스의 주권상장 예비심사를 승인했다. 이 회사는 라오스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조립·판매하는 코라오디벨로핑을 자회사(지분율 100%)로 두고 있다. 코라오(Kolao)는 코리아(Korea)와 라오스(Laos)를 합친 말이다.

라오스 언론은 오세영(왼쪽)회장이 라오스 정부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는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소개했다.

이 회사는 다음 달 공모주 청약을 받은 뒤 12월 초 코스피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공모예정 주식 수는 1093만 주(액면가 0.25달러), 예정가격은 주당 4300~4800원이다. 총 공모금액은 470억~524억원에 달한다. 한국 기업인이 외국에 세운 한상(韓商)기업 중 코스피 시장에 상장하는 것은 코라오홀딩스가 처음이다.

코라오디벨로핑의 매출은 지난해 7500만 달러, 순이익은 1200만 달러다. 그룹 전체 매출은 지난해 3억8000만 달러에 달했고, 올해는 4억 달러를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라오스의 국민총소득(GNI)은 47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740달러에 불과하다. 그만큼 라오스 경제에서 코라오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있는 오 회장은 7일 오후 중앙SUNDAY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싱가포르와 홍콩 증시에서도 여러 번 상장 제의를 받았지만 한국 증시를 선택했다”며 “나이가 들수록 내가 태어나 자란 고국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장을 통해 그룹의 대외 신인도를 높여 라오스는 물론 베트남·태국 등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더욱 활발한 사업을 벌일 것”이라며 “한국 증시에 상장하면 회사의 성장 과실을 한국 투자자들과 공유할 수 있어 더욱 기쁘다”고 덧붙였다. 오 회장은 3월 초 중앙SUNDAY가 주최하고 중앙일보와 지식경제부가 후원한 ‘2010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 대상(대기업 윤리경영 부문)‘을 받았다.

베트남 거쳐 97년부터 라오스에서 사업
-라오스는 지금도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나라는 아니다. 어떻게 가게 됐나.
“코오롱상사에 근무하다 1990년 말 베트남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캄보디아·미얀마를 거쳐 97년 라오스에 왔다. 당시 라오스 전체에 한국 자동차는 단 5대뿐이었다. 한국에서 중고차를 수입해 팔면 장사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시아의 자동차 생산국은 한국과 일본뿐이던 시절이다. 한국차는 일본차의 절반 내지 3분의 1 가격이라 경쟁력이 충분했다. 그런데 중고차는 품질·디자인보다 애프터서비스(AS)와 부품 공급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먼저 대규모 AS센터를 차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라오스 사람들 사이에서 ‘코라오는 믿을 수 있다’고 입소문이 났다.”

오 회장에게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다. 외환위기 직후 철수한 한국 기업의 공장을 싼값에 사들였다. 한국에서 자동차 부품을 가져와 현지 공장에서 조립해 판매했다. 오 회장은 “엔진이나 차체는 중고지만 시트를 바꾸고 도색을 새로 하니 외관은 새 차처럼 깔끔해 인기가 좋았다”고 전했다. 2003년에는 오토바이 사업에도 진출했다. 현재는 전국적인 판매망(쇼룸)을 갖추고 신차와 중고차를 함께 팔고 있다.

-라오스 자동차 시장에서 코라오의 점유율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라오스 자동차 등록대수는 약 20만 대다. 대략 두 대 중 한 대꼴이 코라오가 판매한 한국차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한국차의 점유율이 이 정도로 높은 곳은 라오스가 유일하다. 최근 라오스는 해마다 7% 안팎의 고성장을 하고 있다. 2020년이 되면 1인당 소득은 2000달러, 자동차 등록대수는 60만 대에 달할 전망이다. 앞으로 10년간 40만 대의 자동차 시장이 열린다는 얘기다. 이 중 20만 대를 코라오가 판매한다고 보면 매출 신장률은 엄청날 것이다. 올해만 해도 전년 대비 40% 넘게 성장한 1억1000만 달러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코라오의 자동차 판매망은 현재 120곳 정도인데 내년 상반기까지 200곳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코라오가 라오스 최대의 민간 기업이라고 하는 근거는 뭔가.
“라오스에선 아직 매출 같은 기업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다. 증권거래소도 없고, 상장사도 코라오가 라오스 기업 중 처음이다. 대신 세금 납부실적은 매년 공개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민간 기업 중에는 코라오가 압도적인 1위다. 2~5위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래서 코라오가 사무실을 옮긴다고 하면 지방정부에선 난리가 난다.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서다.”

-자동차 외에 다른 사업은 뭐가 있나.
“물류·건설·금융 등인데 모두 자동차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자동차를 운반하다 보니 물류사업이 필요했고, 쇼룸을 짓기 위해 건설업에도 뛰어들었다. 또 자동차 할부금융에서 시작해 은행업에 진출했다. 인도차이나 뱅크란 이름으로 지난해 2월 문을 열었는데 1년8개월 만에 자산 규모 6500만 달러로 급성장했다. 금융은 자동차와 시너지(상승효과)가 매우 높다. 한국 투자자들과 합작으로 바이오연료 사업에도 진출했다. 이 사업은 라오스 정부에서 관심이 매우 높다.”

-바이오연료라고 하면 어떤 것인가.
“식물성 기름을 짜내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이다. 라오스에 자생하는 자트로파(Jatropha)라는 나무의 열매를 원료로 한다. 식용으로 쓰진 않지만 성장이 빨라 기름을 짜내는 데는 매우 유리하다. 2007년 자트로파 농장을 시작해 올해로 4년째다. 이미 자트로파 기름을 시험 생산해 유럽·태국 등에 수출도 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본격 생산할 예정이다. 원래는 한국과 유럽 시장을 내다보고 시작했는데 라오스 정부가 내년부터 자동차 연료에 일정 부분 바이오디젤을 섞도록 의무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바이오디젤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오 회장은 라오스 정부에서 2340㎢의 땅을 90년간 빌려 자트로파 농장으로 개간하고 있다. 제주도 면적(1848㎢)의 1.2배가 넘는 규모다. 이 사업에는 한국에서 군인공제회·지방행정공제회·굿모닝신한증권 등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정치권과는 ‘불가원 불가근’ 원칙 고수
오 회장이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그도 사업 초기에는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91년 베트남에 현지인과 합작으로 봉제 공장을 차렸다. 처음엔 물건을 만드는 족족 팔려나갔다. 그러다 동업자의 변심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후 베트남에서 한국 중고차를 수입해 팔다 베트남 정부의 수입금지 조치를 맞아 부도를 내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연이은 실패는 오 회장이 라오스에서 새 출발을 할 때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그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현지화와 신뢰를 철칙으로 삼았다. 라오스는 경제 규모가 작은 만큼 시장이 작다는 한계는 있지만 적은 자본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외국인이 이렇게 큰 성공을 하면 현지인의 질시나 견제를 받지 않나.
“코라오도 처음엔 주류 사회의 관심 밖에 있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니 압력이 들어왔다.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굉장히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코라오에선 정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투명하게 경영하고 세금도 다 냈기 때문이다. 이게 라오스 사회에서 코라오가 확실한 믿음을 얻는 계기가 됐다. 라오스 정부도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확실한 성공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인식이 생겼다. 이렇게 해서 코라오는 2003년과 2004년 연속 최우수 기업에 뽑혔다.”

코라오는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라오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마다 100만~150만 달러를 저소득층에 대한 무상 교육과 탁아소·유아원 등 보육시설 운영 등에 지원한다. 세금납부도 1위지만 사회공헌도 1위다. 현지 언론에 코라오의 사회공헌 활동이 대서특필되면서 그룹 이미지도 크게 좋아졌다. 오 회장은 “라오스에 뼈를 묻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는 “라오스엔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 많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불교 국가라 화장을 주로 하기 때문에 묏자리는 아니지만 죽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비교해 ‘라오스의 정주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인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현대와 코라오는 기업 규모에서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성공을 거뒀다는 뜻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오 회장은 정주영 회장과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강원도 출신이면서 초기 사업의 기반이 자동차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업인으로 대성해 국가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도 닮았다. 다만 정 회장은 말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등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오 회장은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정치는 ‘불가원 불가근(멀리 하지도, 가까이 하지도 않는다)’의 원칙을 지킨다. 정부 관련 이권에 뛰어드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라오스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가. 개혁·개방을 했다지만 사업에 어려움이 있을텐데.
“중국하고 비슷한 사회주의 국가다. 정치는 1당 지배지만 경제는 시장원리가 적용된다. 사업에는 전혀 불편을 못 느낀다. 오히려 장점이 많다. 라오스에선 모든 정책이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다. 기업인은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정치권에 한눈을 팔 필요가 없다.”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어떤 사업을 구상하고 있나.
“꼭 자금이 필요해서 상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벌어둔 돈도 많고 계열사에 은행도 있어 자금 사정은 여유가 있다. 상장으로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대외 신인도 향상이다. 앞으로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때 한국 증시 상장기업이라는 간판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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