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글로벌 환율전쟁 포화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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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불붙기 시작한 세계 환율전쟁의 포연이 한국에도 서서히 밀려오고 있다. 한국 외환당국도 5일 우회적인 방법으로 원화가치 방어에 나섰다. 외환을 거래하는 은행에 대한 ‘공동검사’ 카드를 꺼내 간접적으로 원화가치 상승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에 따라 원화가치는 장중 한때 달러당 15원 이상 급락했다.

◆한국도 환율전쟁 당사자=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주요 외국환은행에 대해 오는 19일부터 특별 공동검사를 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 6월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신설했다. 전월 말 자기자본 대비로 국내은행은 50%, 외국은행 국내지점은 250%로 선물환 포지션을 각각 제한했다. 달러가 급격하게 들어왔다 나가는 걸 막자는 조치였다. 은행들은 이에 따라 3개월의 유예기간이 지난 10월 9일부터 선물환 포지션을 축소해야 한다.

한은과 금감원의 발표는 은행들이 규정을 잘 지키는지 점검하겠다는 것이었다. 일상적인 발표로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최근 미국의 양적 완화로 달러가 국내에 많이 들어와 원화가치가 급등한 데 대한 당국의 개입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다음 달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이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미국을 의식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따라서 당국의 공동검사라는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원화가치 방어에 나선 것으로 비춰졌다. 이날 원화가치는 전일 대비 8.40원 급락한 달러당 1130.70원에 장을 마쳤다.

관심은 이 효과가 얼마나 이어질지다. 당국의 우회 개입으로 일시적으로 원화가치 강세를 제어할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강세를 돌려놓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형 무역흑자가 그 배경이다. 시장에서는 11월 2일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오바마 정부가 약달러 정책과 위안화 절상 압력의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본다. 원화가치의 강세도 이때나 돼야 주춤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신흥국 시장은 ‘돈 홍수’=채권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마땅히 갈 곳을 못 찾은 글로벌 자금이 신흥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동아시아 국가의 채권시장은 ‘돈 홍수’에 빠졌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동아시아 신흥국가의 채권시장에 고수익을 좇는 해외 투자자금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올 7월 말 인도네시아 국채 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한 해 전의 16%에서 급격히 늘었다. 말레이시아도 외국인의 국채 보유 비중이 지난해 6월 10%에서 올 6월 18%로 높아졌다. 한국의 경우 이 비중이 3월 말 7.4%를 기록했다. 1년 전의 5.8%에서 상당히 높아진 셈이다.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건 이들 국가의 채권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5일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서구 투자자들이 신흥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과 함께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가 선진국 대비 강세를 유지할 것이란 기대도 한몫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한국 채권시장에서 국고채(5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2%포인트 하락한(채권값 상승) 3.59%에 마감됐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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